명절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휴식을 주고 그로 인해 생활에 새로운 생기를 가져다 주는 활력소가 되는 삶의 마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명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명절이 부담스럽고 무섭기까지 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는 장애인、노약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 이맘 때 쯤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후원 물품으로 방 한구석을 내 줘야 했는데 올해는 여태껏 발길이 없어요』
지난 95년 3월부터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무의탁 임종자들을 위한 시설인「이냐시오의 집(지도=이영찬 신부、예수회)」에서 상근봉사를 해오고 있는 김신원(글라라)씨의 말은 올해 들어 부쩍 심해진 경기 불황의 여파가 사회복지 시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영찬 신부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지난 93년 설립 당시 때보다 후원자가 70여 명에서 1백50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 사이 함께 사는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경제적 사정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아직도 60여 평이 좀 넘는 낡은 사글세방 살이를 못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 「이냐시오의 집」의 현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냐시오의 집」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정신지체、중풍、치매 등을 함께 앓고 있는데다 평균 연령도 70대에서부터 80대에 이르고 있어 봉사자들의 손길은 어린 아이를 둔 어머니 만큼이나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봉사자들에 따르면 후원자들이 매월 정기적으로 보내오던 1천 원에서 몇만 원에 이르는 후원금도 그나마 올 들어 반 이상이 줄어든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재정 지원이 거의 없는 속에서 일찌감치 「이냐시오의 집」의 자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온 이영찬 신부는 지난해부터는 경기도 양평에 2백여 평의 밭을 임대해 가족들이 먹을 채소류를 직접 가꾸기도 하고 올 들어서는 15마지기의 논을 빌려 손수 벼 농사를 지어 식량자급에 나서는 등 눈물 어린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월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건물 임대료나 가족들의 병원비 등 경상비를 주체하기가 힘들어 암담하기만 하다.
이 신부는 『자립을 위해 그간 조금씩이나마 적립해 왔던 기금을 올해 들어 까먹고 있는 실정이어서 언제쯤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어려울 때일수록 자그마한 도움이 아쉽다』고 털어 놓았다.
이런 어려운 중에도 「이냐시오의 집」 가족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 4시만 되면 성모상 주위에 둘러 앉아 자신들보다 더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나아가 이웃을 위해 정성스럽게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냐시오의 집」 근처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 주민 박점선(34)씨는 『이냐시오의 집 가족들은 자신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을 길 청소를 하는 등 주위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어 모범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추석、남은 것이 아닌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조차 나누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대끼는 삶에서 잠시만 눈길을 돌려 보면 이들이 보일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큰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줄지 않는 끊임없는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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