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막달레나 수녀 "문봉리 동골에서 음력 3월과 동짓달 사방에서 선비와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큰 제사를 지냈다, 한 선비가 빨간 옷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유씨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고 오기선 신부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 "배티 일대 10여 개의 교우촌이 모두 배티를 중심으로 반경 4km 이내에 위치해 있지만 문봉리 동골만 그 반경에서 10km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의 첫 사목 거점인 「동골」의 위치 검증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사목 루트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탐사가 요청된다.
가톨릭신문은 「동골」의 정확한 위치가 빨리 밝혀지길 희망하며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동골 문제에 대한 학자와 단체간의 견해를 종합해 보았다.
배티 성지 일대 교우촌
충북 진천 지역에 가톨릭 신앙이 싹튼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전후이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를 보면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순교한 충청도 경성현 덕머리 출신인 원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진천 「질마로」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일대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 무렵으로 교회사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가 거듭되면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신자들이 은신처를 찾아 산 속 깊이 숨어들면서 골짜기마다 교우촌이 늘어났다.
1866년 병인박해 전 배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우촌은 삼박골, 정삼이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통점, 동골, 새울, 은골, 불무골, 모니, 소골, 지구머리, 지장골, 굴티 등 10여 곳이 넘었다. 이곳에서 신자들은 대부분 옹기나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교우들의 생활상은 배티 일대 교우촌을 무대로 쓰여진 윤의병 신부의 군난소설 「은화」에 잘 나타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순교자 50여 명을 탄생시키고 일시적으로 와해됐다. 이후 1884년 이래 선교사들에 의해 배티, 삼박골, 용진골, 새울, 굴티 등 다섯 공소가 설정됐으나 1930년부터 신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 현재에는 새울과 백곡에만 공소가 남아있다.
문헌이 증언하는 동골
배티 일대 교우촌은 최양업 신부의 사목 활동의 보금자리요 중심지였다. 또한 이곳은 교회사에 길이 남을 최양업 신부의 저술 활동이 이루어진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동골」은 최양업 신부가 귀국 후 거처를 정했던 곳이다.
동골은 최양업 신부가 1854년 11월 4일자에 쓴 편지의 발신지로 기록돼 나오고 있으며 최양업 신부의 조카 즉 최 신부의 셋째 동생 최우정 바실리오의 장남 최상종이 쓴 「최 바실리오 이력서」와 「최 신부 이력서」에도 명시되어 나온다.
바실리오 이력서에 의하면 최우정 바실리오가 진천 동골의 어떤 친척집에서 자랐으며 또 신부가 주교의 분부로 진천 동골에 유하였다고 한다.
최 신부 이력서에는 최양업 신부가 동골 공소로 배정되어 몇 해를 머무르며 전교한 사실이 나온다.
아울러 한글학회가 1970년 간행한 「한국지명총람」 제3 충북편에 보면 진천군 내에 「동골」이 네 곳이 나온다. 진천면 문봉리의 「동골(동곡리)마을」과 연곡리의 쥐눈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인 「동골」, 백곡면 사송리의 「동골 고개」, 백곡면 영덕리의 골짜기 「살인동골」이다.
최석우 신부의 해석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최석우 신부는 동골을 증언하고 있는 이력서들에 대해 「진천의 동골」로 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지만 몇 가지 문제점은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로 이들 이력서들이 최양업 신부 집안 자체에서 작성한 것이고 너무 후대에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최 바실리오 이력서는 1939년에, 최 신부 이력서는 해방 후에 작성됐다.
그래서 최석우 신부는 보다 이 위치가 신빙성을 갖기 위해선 제3자에 의해 작성되고 또 좀 더 오래된 기록으로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석우 신부는 그러나 진천 공소들을 방문한 파스키 신부의 1892년 연말 보고서에 의하면 『박해 때 진천에는 10여 개의 교우촌이 있었으나 모두가 파괴되고 교우들은 흩어졌다』고 적고 있다며 동골은 구체적으로 박해 때 진천에 존재했던 10여 개 공소 중 하나였고 또한 박해로 폐허가 된 이후 영영 재기하지 못한 공소임을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막달레나 수녀의 증언
현재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에 위치한 동골 마을을 옛날 최양업 신부가 거주했던 동골 교우촌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한 이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김 막달레나 수녀였다.
1970년대 배티 성지에서 소임을 맡고 있던 김 수녀는 당시 최석우 신부의 조언에 따라 동골을 찾아 보기로 하고 배티 인근 마을과 골짜기를 답사하던 중 동골 마을이 과거 교우촌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확신은 이 마을에 많은 숯구덩이와 옹기 터가 있을 뿐 아니라 이 마을에서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유봉열 할머니의 증언에 힘입어서이다. 유 할머니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라고 했다.
김 막달레나 수녀가 1978년 6월 20일경 녹취한 유봉열 할머니(92년 3월 21일 89세로 작고)의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서 음력 3월과 동짓달이면 흰 두루마기에 큰 갓을 쓴 선비들과 잘 차려입은 부녀자 70~80여 명이 안성, 천안, 목천 등 사방에서 모여들어 저녁에 큰 제사를 지내고 날이 밝으면 부리나케 흩어졌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 집안도 아닌 유 할머니는 『이곳에서 한 선비가 때로는 빨간 옷을 입고, 어떤 때는 파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이야기를 시어머니가 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곳 동골에는 12개의 동리 이름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구성골 사기장골 머그나무골 원통골 쥰너니골 웃동골 느락골 강사무골 말림터골 갈발골 양달말 음달말 등이 그것이다. 이들 동리 이름들은 모두 그 뜻이 교우들의 생활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이곳이 동골 교우촌임을 확신하고 1992년에 분원 설립과 함께 현재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과 전시관을 건립하고 있다.
문봉리 동골에 대한 반대 견해
문봉리 동골 교우촌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만만찮다. 이들은 고 오기선 신부가 지적한 백곡리 배티 동골이 「동골 교우촌」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배티 일대 10여 개의 교우촌이 모두 배티를 중심으로 반경 4km 이내에 위치해 있지만 문봉리 동골만 유독 그 반경에서 떨어져 10km 내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문봉리 동골에는 신자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박해로 인한 약탈로 흔적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배티나 삼박골 등 다른 교우촌은 신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문봉리 동골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 중심지와 피난처 루트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1858~1861년까지 배티에서 거주하면서 최양업 신부 임종 때 종부를 준 프티니콜라 신부의 증언이나 칼래 신부의 기록에 보면 문경새재-괴산-진천 덕문이뜰-백곡-진천 냇물-용진골, 삼박골 등 배티 일대 교우촌-엽돈재-천안 목천 서둔골로 다녔다.
이 사목 활동 루트에 문봉리가 빠져 있기에 오기선 신부의 「배티 동골」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문봉리 동골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면서도 『현재 김 막달레나 수녀가 갖고 있는 유봉열 할머니의 증언이 유일한 증언이기 때문에 이보다 오래된 신빙성 있는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문봉리 동골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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