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난 후 평소 사용했던 개인 소지품들은 캘커타 마더 하우스 안의 유품 전시관에 보존, 전시된다. 인도 정부가 마더 하우스를 사적으로 선포할 예정이지만 전시될 유품은 한 자루의 펜과 2벌의 사리, 일기장, 묵주, 성경 등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가 죽음을 애도할만큼 위대한 인물 데레사 수녀가 남긴 개인 유품은 이렇듯 보잘것 없지만 지난 87년간의 생애동안 이룩한 1백24개국, 5천6백4개의 자선센터를 보면 1백50cm의 단구, 한 사람의 수녀가 남긴 자취는 참으로 거대하다.
하지만 이런 「실적」보다 오히려 더 큰 「유품」은 「구체적인 사랑」의 모범이자 정신이다. 세계 최대의 빈곤 도시, 상상을 뛰어넘는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곳, 하루에도 수많은 병자와 버림 받는 이들이 썩어가는 육체를 어찌할 수 없이 나뒹굴던 캘커타를 「시티 오브 조이」로 불리게 한 것은 오직 데레사 수녀가 보여준 「사랑」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데레사 수녀는 심장병으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만원전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3등 기차칸에서 밤을 새우고 빈약한 음식에 빈민들의 움막 바닥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하지만 그는 버림 받은 사람들,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노벨상 수상 후 연회를 취소해 그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렸고 교황이 선사한 승용차를 팔아치웠다. 어쩌면 데레사 수녀는 자신의 장례식장에서조차 비용을 줄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데레사 수녀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13일 캘커타시 외곽에 있는 「죽어가는 빈자의 집」에 수용된 환자들은 『데레사 수녀는 우리의 희망이었다』며 『그가 없으니 이제 우리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다』고 말하며 낙담했다고 한다.
이들 자선 단체들의 운영자들은 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동안 받던 도움들이 끊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의 선교회」는 활동자금의 대부분을 데레사 수녀 본인이 마련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선교회 활동이 위축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각종 기부금과 자원봉사 활동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데레사 수녀의 뒤를 이어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어 나갈 니르말라 수녀는 『데레사 수녀가 남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 봉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고 메시지를 통해 『하느님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며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나자 온 세계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혹자는 그의 조속한 시성을 점치는 성급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하느님 곁으로 떠난 데레사 수녀는 자신이 그랬듯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길 가장 원할 것이다.
사랑의 선교회가 데레사 수녀 사후 재정적인 어려움을 우려하는 반면에 3백억 원이 넘는 유산과 장차 왕에 오를 왕자를 남긴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 추모기금은 접수 사흘만에 1천4백50억 원을 넘어섰고 앞으로 1조4천5백억 원까지 얻을 것으로 예상돼 대조를 보인다.
데레사 수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잠시라도 좋으니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작은 사랑의 행위를 해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주위에 불우한 이웃에게 따스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 빵 한 조각 나누어 주는 것이 진정 데레사 수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진정한 가르침일 것이다. 만일 지금 내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작은 사랑을 나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의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데레사 수녀가 남긴 사랑의 빛은 영원히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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