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2독서의 내용은 부자들에 대해 질책하는 사도 야고보의 말씀이다. 『당신들의 재물은 썩었다. 많은 옷가지들은 좀먹어버렸다. 금과 은이 녹슬었다』고 말한다. 금과 은이 녹슬리 없지만 썩은 상태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또 『일꾼들 품삯을 가로챘다. 사치와 쾌락으로 지냈고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웠다. 죄 없는 사람들을 단죄하고 죽였다』고 말한다.
신문을 읽어 보면 부정부패가 정치면의 단골 메뉴이다. 국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담합인상, 폭리, 개인 이기주의, 동네 이기주의 등 온갖 못된 것으로 가득차 있다. 의리, 성실, 정의, 도덕, 교양, 윤리 등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자가용 천만 대 시대다. 기존의 윤리 도덕 외에 교통도덕이 하나 더 첨가되었다. 그러나 정착이 안 되어 형편없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죽어야 정신 차릴까? 온 천지에 정의의 물결은 사라지고 불의만 홍수처럼 가득차 있다. 천고마비라는 말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인데 요새는 「물가는 하늘같이 높고 교통이 마비된다」고 해석한다.
이조 말기 우리 순교자들의 시대는 어떠했을까? 역시 부정부패, 매관매직, 각종 불의가 만연했었다. 당시는 끝없는 당쟁과 철저한 복수의 시대였다. 임금에게 아부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면 정적을 가차없이 유배시키거나, 사약을 내리게 했으며 삼족을 멸했다. 이때 요행히 살아남은 이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피로써 갚는 것이 효도였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시대였다. 그 당시는 또한 사상적인 공백시대였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유교의 윤리는 약육강식의 윤리로 전락했다. 유교 윤리는 잘 되어 있는데 권력자들이 사악한 마음으로 자기들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그들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상놈이 말 타고 갈 때 양반이 지나가면 말에서 내려야 하며 만약 안 내리면 때려서라도 내려 걸어가게 했다. 그래도 상놈은 아무 말 못했다. 칠거지악, 삼강오륜, 삼종지의 등의 도덕률은 강자만을 위한 도덕률이었다. 따라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즉 평화공존, 민족 번영,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철학 또는 사상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섰던 분들이 계셨으니, 바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선각자들이었다. 권력자들이 만든 불합리한 인간의 정의를 하느님의 정의로 바꾸어 놓는 수고를 하신 분들이 순교자들이다. 새로운 사상인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하고 망국을 부추기는 여러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일어섰던 것이다. 민중 봉기나, 가두 시위로써가 아니라 천주교 신앙에 입각해 새 철학, 새 사상, 새 학문의 전파로써 말이다. 그리하여 양반 상놈 계급의 타파를 부르짖었으며 여자 및 어린이들에게도 인권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한글로 쉽게 교리서를 만들어 한글 보급에도 앞장 섰으며, 신 학문 체계를 정립하고 가르치기에 힘썼다. 그들은 이를 위해서 오늘 복음말씀처럼 한 눈 팔지 않았으며 그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가르친 길로만 가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눈을 뽑고 손을 찍어 버린다는 각오로 그 길을 걸어갔다. 예수님께서 분부하신대로, 외곬수로 그 한 길만을 갔다. 이 길만이 너와 내가 사는 길이며, 우리가 사는 길이며,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길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아부하지도, 뇌물 주지도 않았고 사기쳐 먹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부정부패에 맞서서 끝까지 싸웠던 것이다. 그 가르침대로 사랑으로 다스리며 끝까지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였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우리도 시대의 징표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나라의 현재상황도 이조 말기나 별로 다를 게 없다. 정치는 민주 개혁으로 가는가 했더니 다시 보수로 복귀해 버렸다.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사악해져 간다. 공해로 우리의 터전인 땅도 쓰레기장이 됐고 사상도 쓰레기로 가득 찼으며 마음도 쓰레기장화(황폐화) 되어가고 있다.
누가 이런 상황을 정화할 수 있을까? 우리 천주교가 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순교자들처럼 우리 신앙에 대해 흔들림 없이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순교자들이 가졌던 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순교자 분들의 유훈인 신앙의 확신과 실천적 용기를 되새겨 보자. 그리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이 땅에 세워지고 그 바탕 위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자.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