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을 현양하는 것만큼 이들의 신앙유산과 유물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 유물들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앙적, 정신적, 윤리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들을 종합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문화재라 할 수 있는 이들 신앙유산들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은 한마디로 부끄러울 정도이다. 정신과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톨릭신문은 순교자성월 특집 「신앙유산 관리 이대로 좋은가」를 통해 교회 내 신앙유산 보존 실태와 개선 방안, 전문 박물관의 필요성을 진단해 보았다.
■ 국내 순교자 기념관 실태
한국 가톨릭교회 내 최대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기념관을 비롯 부산 오륜대 한국 순교자기념관 등 대부분의 순교자 기념관은 「성해실」과 「유해 보관실」 「전시실」 「수장고」 시설을 갖추고 교회의 유물과 유산을 보존, 관리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 순교자 기념관 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소장품을 보존 관리하는 기초 장비가 전무하다시피 미비할뿐 아니라 건물 내 공조 관련 설비는 「공기정화기」가 유일할 정도로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전시물 진열장, 조명시설, 화재방지 장비도 낙후돼 있어 장기적인 보존 측면에서 볼 때 열악한 환경이다.
교회 내 순교자 기념관은 지류와 섬유, 인골, 목재, 금속, 회화류 등 다양한 재질의 유품들이 함께 전시, 보관되고 있어 보존환경에 따라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아울러 많은 기념관이 도난 방지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을뿐 아니라 설혹 최신 설비의 경보 시스템을 설치한 기념관들도 출입구를 중심으로 한 야간경비 시스템으로 소장품의 안전에는 미흡한 형편이다.
거의 모든 순교자 기념관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한 원인에 대해 시설 운영 당사자들은 크게 3가지로 그 이유를 지적한다. ▲낮은 문화의식 ▲불안정한 예산 편성 ▲교회 당국의 신앙유산 보존의지 부재이다.
기념관 측은 전체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교회 내 신앙유산에 대한 신자들의 의식 수준도 그에 상응하게 향상돼야만 일차적으로 환경 여건을 개선할 기반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순례자들의 미사 예물과 헌금, 성물 판매 수익, 후원회비로 충당하는 기념관 운영 예산이 늘 불안정하기에 체계적인 시설 설비 투자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기념관 측 관계자들은 이러한 애로점을 감안할 때 교회 당국이 순교기념관 운영에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교회 내 전문 박물관 필요성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244조는 『교회는 고유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보전하면서, 그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지역과 시대의 모든 문화환경에 적응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지역 공동체의 문화환경을 두고 한 말이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전과 문화환경의 적응에도 상충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목지침서에 따른다면 한국교회는 고유의 순교 문화유산을 보전하면서 지역과 시대의 모든 문화환경에 이를 현양하고 적응시킬 실천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교구 지역별로 순교문화를 창달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국 가톨릭 문화유산을 한 눈에 소개할 박물관을 해당 지역 내에 건립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물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그러나 일부 사목자들과 평신도들은 지역 주민들의 소수만이 가톨릭 신자인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 때 지역별로 가톨릭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개방적이고 전문적인 박물관을 건립할 때 복음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박물관 건립이 「듣고 인식하기 보다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하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서 교회를 알리는 효과적인 방안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들은 또 새로운 박물관을 짓기란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은만큼 기존의 순교자 기념관을 전면 개보수해 명실상부한 박물관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급적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에 교회 박물관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 적은 예산으로 쾌적한 전시 공간 마련법
호암 미술관 보존과학실팀 조언-밀폐성 유지 위한 일상 점검이 가장 중요
항온항습기 대신 습도 조절제라도, 종이류에는 햇빛 차단 필수
형광등엔 자외선 차단 필름, 분말소화기는 하론가스로 대체
대부분의 순교자 기념관이 안고 있는 문제는 부족한 공간이다. 기념관 내에 수장고와 전시실이 부족한데도 성당과 사무실 등 모든 부대시설이 함께 공간을 차지해 더욱더 열악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래서 유물보존 전문가는 물론 기념관측 관계자들도 『순교자 기념관이 박물관으로서의 제 역할만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조처이다. 따라서 저예산으로 고효율을 창출하는 개선방안이 요청된다.
가장 중요하고도 곧바로 착수할 수 있는 개선책은 수장품과 전시물에 대한 「일상 정검」이다. 특히 성해실과 유해 보관실의 경우 완벽한 밀폐성 확보가 유해 보존의 관건인만큼 밀폐성 유지에 관한 일상 점검이 중요하다. 한 실무자는 가스 점검과 같이 외부 접착 부분의 기포 형성 여부를 점검하는 것도 밀폐성 조사의 한 방법이라고 도움말을 줬다.
유해는 또한 온도와 습도의 영향으로 변색되거나 휘어지기 쉬워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항온항습기 설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만만찮은 자금과 설치 공간이 요구된다. 이의 차선책으로 밀폐성이 좋은 캐비닛을 구입, 습도 조절제를 함께 넣어 유해를 보관하는 방법도 한 방편이 된다.
회화와 지류의 경우 자외선이 가장 큰 적이기에 햇빛 차단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형광등에서도 자외선이 방출되기 때문에 조명시설 전체를 자외선 차단용 형광등으로 교체하거나 일반 형광등에 자외선 차단 필름을 끼워주면 된다.
또 대부분 화재방지 설비로 갖추고 있는 분말소화기는 분사시 유물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하론가스로 대체하면 보다 효율적이다.
이처럼 저예산으로 형광등과 박물관 조건에 맞는 소화기를 교체하고 햇빛만 차단해도 현 상황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으로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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