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는 「위대한 저술가」요 「한국 신학 토착화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최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뿐만 아니라 교의사에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최 신부는 1847년 홍콩에서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조선 순교자들의 전기」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냈고, 이를 같은 해 10월 15일 루케 주교가 교황청 경신성(과거 예부성성)에 제출, 접수시켰다.
최 신부의 이 문서가 근거가 되어 1857년 9월 24일 교황 비오 9세는 한국 순교자 82위를 가경자로 선포했고, 그 중 79위가 1925년 복자 위에 올라 1984년 시성돼 성인품에 올랐다.
최 신부는 또 샤를르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저술에 많은 공헌을 했다. 1857년 다블뤼 신부가 조선 제4대 교구장인 베르뇌 주교의 명을 받아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순교사록을 보완, 수집해 「비망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유명한 「다블뤼 신부의 비망기」인데 이를 바탕으로 달레 신부가 1874년 한국 천주교회사를 저술했는데, 다블뤼 신부를 도와 순교사록을 수집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실무자가 바로 최양업 신부였다.
최 신부는 또 1858년 주요 기도서인 「성교공과」책을 번역했고, 한국교회가 최초로 교리서로 채택한 「성교 요리문답」을 1860년 다블뤼 신부와 함께 번역해 엮어냈다.
최양업 신부의 업적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천주가사」의 저술이다.
천주가사는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간추린 조선 후기 대중가사인 4ㆍ4조와 가사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종의 성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저자가 최양업 신부로 명기돼 있는 천주가사는 모두 19편이다. 장단가를 모두 합쳐서 「사향가」 「영세가」 「천당가」 「지옥가」 「십계 강론」 「삼계대의」 「견진」 「고해」 「성체」 「종부」 「신품」 「칠극」 「혼배」 「제경」 「행선」 등이 남아 있다.
최 신부의 천주가사 내용을 요약하면 천국에 대한 갈망과 천국을 사모하는 노래들이며 반대로 지옥의 무서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칠성사의 은혜와 필요성, 십계명 풀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 7가지 죄의 근원에 대한 경계, 혼인 의무, 교회 제반 의무, 선한 죽음과 사심판에 대한 실천 등을 강조하고 권고하고 있다.
천주가사의 근본 의도는 가톨릭 기본 교리를 통해 당시 사람들에게 확고한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신자로서의 삶을 굳건히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소지해, 순교까지 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는데 있었다.
신학자들은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는 한국인의 전통사상과 서민의식에 알맞게 가톨릭 교리를 토착화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최양업 신부가 「성교 요리문답」 편역과 「천주가사」 저술 업적만으로도 한국 가톨릭교회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 자리에 우뚝 서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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