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잭팟(Jackpot)이 터져서 6백만 불을 거머쥐게 된다면?』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들어갈 때면 으레 서로 약속을 한다. 첫째로 동전 한 푼이라도 꿔주거나 받지 말 것. 왜냐하면 내가 꿔준 돈으로 횡재했으니 나와 반씩 나눠야 한다고 대들지 모르니까(실제로 그런 재판이 많다고 한다). 둘째는 내가 땄어도 너희들에겐 저녁 한 끼 근사하게 낼 테니까 그 이후로 서로 안면 몰수할 것. 셋째로 돈 땄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기자 인터뷰할 것을 생각해 둔다. 넷째로 그 돈을 챙겨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한다. 돈 꿔달라는 사람이 많을 터이므로. 그리고 안 갚을 것이 뻔하므로……. 이젠 약속이 다 되었다. 도시로 들어오니 후드드득! 후드드득! 돈 쏟아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덤벼본다. 그리고는? 웬걸. 몽땅 털리고 만다. 아까의 약속은 즐거운 헛소리일 뿐이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그렇게도 못 가져 안달일까? 하긴 나에게 누가 1억쯤 거저 준다면(그럴리야 없겠지만) 정신이 산란할 것이다. 분심이 들 것이다. 이 돈을 어찌 해야 하나? 어디다 써야 하나?
이 하늘 높은 시월에 웬 느닷없는 돈타령이냐고? 그러나 요즘 세상 돈 때문에 신세망치는 사람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뜻에서, 아니 정당하게 벌고 제대로 돈을 쓸 줄 알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다. 돈 철학을 엉성하게나마 늘어놓으려 한다. 옛날 우리나라 동전은, 가운데 구멍은 사각형이고 겉은 동그랗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하늘은 둥글고「천원(天圓)」, 땅은 네모나다「지방(地方)」고 생각했다. 이런 동양의 사고에 근거해서 동전 겉은 하늘을 뜻해서 둥글고, 안은 땅을 생각해서 네모구멍을 뚫은 것이다. 이것은 곧「천원지방」으로 온천지 온 누리에 돈이 통용되라는 뜻이다. 그리고 「돈」이란 말도 돌고 돈다 해서 생긴 것이니 돈은 자꾸 돌려야 한다.
돈은 감추어두면 안 된다는 뜻이다. 선거자금이니 비자금이니 안정기금이니 떡값이니 음성적 수입이니 뭐니 하고 돈을 감추면 썩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썩으면 윤리도 양심도 썩게 된다. 옛날 돈은 가운데 구멍을 뚫었으므로 그 돈을 눈앞에 바짝 갖다가 대어도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동전은 구멍이 없다. 그래서 막힌 동전을 눈앞에 바짝 갖다 대면 캄캄하다. 이렇듯 요즘 사람들은 돈을 눈앞에 두면 도덕이고 윤리고 철학이고 할 것 없이 인격 전체가 캄캄해진다. 사람이 검어진다. 황금흑사심(黃金黑士心)이다.
그러므로 막힌 동전이라도 옛날 것처럼 뚫고 보는 지혜가 있어야 돈을 이기지, 돈에 잡혀서는 검은 인생을 살게 된다. 감옥에 엮여 들어간 사람들의 인생이랄까. 옛날 동전은 그 이름이 상평통보였다. 1633년 인조 11년 김육이 건의하여 시작되었다. 상평이란 말을 풀이해 보자. 돈은 항상 잘 유통되어야 한다. 있을 때 저축하고 없을 때 활용해야 한다. 있을 때 저축하고 없을 때 활용해야 한다. 곡식도 마찬가지로 수확기에 많이 비축했다가 빈궁기에 풀어야 한다. 이래야 경제가 상시평준이 된다. 이 말을 줄여 상평이라 했다. 오늘 가난해도 내일 부자가 될 수 있고 오늘 부자였다가 내일 가난해질 수도 있다. 정신 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상시평준이 상평이고 이런 유통이 되는 보물이 통보라면 자연스럽게 상평통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상평일 것이다. 특히 자선사업에 쓰는 돈은 어느 면에서 상평통보이다. 그러므로 내게 재산이 있다고 움켜쥐기만 하고 내놓지 아니하고 주지 아니하는 사람은 유무상통(有無相通), 상하평준(上下平準)의 자세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돈을 잘 써보자. 잘 쓰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모든 정치가들이 권력을 잡을 당시에는 국민들에게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사회복지를 위해 괄목할만하게 해놓은 게 무엇인가? 별로 없다. 노인문제를 해결했나, 장애인이 자긍심 갖고 살도록 해줬나? 가난한 자에게 혜택을 제대로 주었나, 수입이 많았으면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나, 도로 표지판이라도 제대로 해서 사고를 줄이려 했나, 도대체 상평 위해 노력한 흔적이 안 보인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부와 재물에 대해 훈계하신다. 어느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이 청년이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 중에 떠나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이는 부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 구원의 방해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지혜이신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내걸고 결단을 내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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