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개최 의미
제주 선교 1백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김창유)가 10월 3일 개최한 「신축교안(辛丑敎案)」에 관한 심포지엄은 그간 제주지역에서 교안의 발생 원인과 배경을 둘러싸고 향토 사학자와 천주교회 간에 첨예한 의견 차이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개최 전부터 관심을 모았었다.
제주에서는 그간 신축교안의 원인을 놓고 『1폐가 세폐고 2폐가 교폐냐』아니면 『1폐가 교폐고 2폐가 세폐냐』는 식의 대립을 보여 왔다. 이러한 갈등은 제주교구가 선교 1백주년 기념사업들을 준비하면서 신축교안에 관한 심포지엄을 일찌감치 기획했었으나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맞물려 쉽게 착수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다.
제주교구는 그러나 역사학자들 마다 견해가 상반되는 신축교안을 교회 안에서라도 정리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제주교구는 당초 교회 내 인사들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려 했으나 이 기회에 각 사학자들 간에 상이할 수밖에 없는 학문적 접근을 전제로 교회 밖 견해들까지 허심탄회하게 수용하고 나누는 기회로 삼기 위해 향토 사학자들도 다수 초청,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제주교구의 이러한 시도는 신축교안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동일한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교회와 사회가 과거의 오해와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와 화해를 도모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 내내 발표자들과 토론자들도 각자의 학문적 주장과 견해를 솔직하게 밝힘과 동시에 이러한 교회 측의 의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이번 심포지엄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낳았다.
◆발표내용 요약
이날 주제 발표는 최석우 신부(한국 교회사연구소 소장)화 박찬식씨(제주도 전문위원), 문창우 신부(중앙본당 보좌)가 나서 「한국 천주교회사와 신축교안」, 「신축교안의 선교사적 고찰」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어 종합 토론에서는 임문철 신부(서귀복자본당 주임)와 김봉옥씨(향토 사학자), 강만생씨(한라일보 논설위원), 현임종씨(전 제주교구 평협회장)가 참가해 신축교안의 원인과 전개, 결과 등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천주교회사와 신축교안(최석우 신부)
최석우 신부는 본론에 앞서 지금까지 이 사건은 제주교안, 신축교난, 이재수의 난, 제주 민란 등으로 불리웠으나 그것이 담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종합할 때 교안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하며, 따라서 「1901년 제주 신축교안」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주로 천주교회의 입장에서 신축교안의 배경과 원인, 성격 등을 설명한 최 신부는 당시 교회는 신축교안의 원인을 대략 네 가지 즉 ▲교세 확장에 따른 외교인들과 무당들의 모함과 질시 ▲세폐(稅弊)와 관련된 것으로 공사(公士), 포구(浦口), 가호(家戶)등의 조세문제와 봉세관의 착취, 이에 의해 야기된 지방관들의 선동과 민란 ▲1901년 2월 9일 정의군에서 발생한 오신락 자결사건의 책임을 교회에 돌린 점 ▲직접적인 원인이 된 상무사의 폭동으로 보았다고 지적하고 1901년 5월 5일 이후 폭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상모략에 의해 천주교 신자들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축교안은 여러 가지 성격이 복합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반봉건적인 요소 즉 민란적인 요소도 상당 부분 들어 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살해된 사람들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라는 점에서 그 전개 과정에서 철저하게 반 천주교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당시 뮈텔 주교처럼 이 부분을 중시해 이 사건을 박해로 보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교폐 내지는 교·민의 대립과 갈등의 요소가 더욱 컸고, 사건해결 과정이 외교문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박해보다는 교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축교안의 교회사적 의미에 있어서 최 신부는 특히 「당시 신자 희생자들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관련, 그들을 순교자로 부르기에는 박해적 요소가 빈약하다고 밝히고 천주교 신앙으로 인한 「희생자」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최 신부는 그러나 사료상으로 이들을 순교자로 부를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하더라도 교안의 전개과정상 배교를 강요당한 경우가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되며, 따라서 이들 가운데 증거자적 삶을 산 이들을 선별해서 그들의 삶과 죽음을 표양화시키고 선교 1백주년 정신운동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제주교구의 몫이라고 말했다.
■신축교안의 원인과 전개-뮈텔 문서를 중심으로(박찬식)
박 교수는 당시 사목자이던 라크루 신부가 뮈텔 주교에 보낸 보고서와 뮈텔 주교가 정리한 문건을 통해 볼 때 교회 측은 신축교안의 원인을 우선 봉세관의 세폐에 대한 관(官)과 토착 세력의 불만이 교회 측으로 전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다음이 교세확장에 따른 향촌사회의 향임을 비롯한 민인들과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1900년 내장원에서 파격된 봉세관 강봉헌은 조세문제와 관련해 무리한 수탈을 강행했고, 이로 인해 관과 토착 세력은 봉세관에 심한 불만을 갖게 된다. 이 봉세관은 천주교 신자로 알려지면서 신자들에게 각종 면세의 특권을 부여했다.
따라서 봉세관에 대한 토착 세력의 불만이 신자들에 대한 면세 특혜로 인해 교회 측으로 전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1899년에 선교사가 파견된 지 2년도 채 안 돼 급격한 신장세를 보인데 대한 지방관과 도민들의 반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치외법권 혜택을 받던 프랑스 선교사와 신자들은 하나의 사회세력으로 일반에 인식되었다. 교-민 사이의 대립은 오신락의 죽음을 계기로 증폭된다. 향토사가들은 당시 김원영 신부가 무리한 포교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에 멋대로 사형을 가한 결과라고 보는 반면, 교회는 오신락의 죽음을 신자들을 구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볼 때 신축교안의 원인은 세폐와 교폐의 결합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폐라기보다는 세폐에 있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선교사들의 경건주의와 토착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진 무리한 선교방식은 도민들의 반발을 삼으로써 교회를 배척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제주교안은 단순히 반 천주교적 민란이나 민중항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원인을 내포하고 있다. 교폐는 제주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빚어지던 교회와 관·민과의 갈등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 단 제주도에서는 봉세관의 세폐에 일부 교민들이 편승함으로써 도민들에게 교회가 표면적인 적대세력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주교안의 근본 원인은 봉세관의 정부를 비롯한 당시 정치 경제 사회 구조의 모순에서 찾아야 옳다.
■신축교안의 선교사적 고찰(문창우 신부)
문 신부는 본 논문의 의도가 역사를 반추해 보고 교·민이 화해하고 일치를 지향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에는 다분히 열린 자세가 요구되고 그것이 가능할 때 이 자리가 교회와 도민과의 문화적(정신적) 만남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문 신부는 이러한 의도를 전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통해 본 신축교안의 문제점과 원인, 신학적 전망을 내놓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복음화(선교)는 단순히 자기 종교의 세력 확장이 아니라 하느님 구원 의지의 전파를 목적으로 삼는다. 나아가 종교간 대화를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보게 했다. 그리스도교는 타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그 문화의 고유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리스도성을 찾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축교안 당시의 선교사들은 조선 후기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문화우월주의에 집착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그들은 양대인(洋大人) 선교상의 특권을 행사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교인들 역시 이들에 의지하여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 법률적 특권을 행사했다.
아울러 교회가 당시의 전통 신앙과 기존 관념들을 경시하고 배척한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문화적 만남이 아니라 문화적 충돌을 야기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문화와 종교 자체의 만남을 중요시한다. 어느 한편을 강조할 때 대립과 충돌이 일어난다.
당시 교폐 혹은 세폐라는 교안의 원인들 이면에는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배타성과 우월성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공의회의 관점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반성함으로써 화해를 위한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어질 것이다.
◆신축교안(辛丑敎案)이란
신축교안은 1901년 신축년에 천주교인들과 제주도민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으로 한국교회사 안에서 대표적인 교안의 하나. 교회에서는 그동안 박해 측면을 강조해 신축교난(敎亂)으로 불러왔다.
제주에 선교사가 파견된 지 2년째 되던 해인 1901년 제주지역은 교우가 2백50여 명, 예비교우가 7백여 명에 이를 만큼 교세가 급신장했다.
이때 제주에 봉세관으로 파견된 강봉헌이 세금을 거두는 문제로 도민들의 원성을 샀고 세금을 거두는 소위 마름들 가운데 교우들이 끼어 있어 원성이 교회에까지 미치게 됐다.
게다가 선교 과정에서 토착 문화와의 충돌로 도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대정군수 채구석과 유임의 좌수 오대현 등이 일본 상인들과 결탁해 봉세관과 교회에 대항하였으며, 1901년 5월 무장한 이들은 제주읍을 공격해 수백 명의 교우들을 학살했다.
신축교안의 원인에 대해서는 『교폐가 먼저냐, 세폐가 먼저냐』를 놓고 그동안 교회와 향토 사학자의 주장이 서로 달라 첨예한 갈등을 빚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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