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외신종합】미 연방대법원이 10월 14일 지난 84년 오리건 주에서 국민투표로 통과된 「의사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허용법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안락사의 합법화가 물꼬를 틀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94년 오리건 주에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법」이 찬성 51%, 반대 49%로 통과된 후 「전국생명권위원회」(NRLC)가 이 법을 상대로 제기한 위헌 소송을 검토한 끝에 이 날 이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6월 『각 주 당국이 안락사를 금지시킬 수 있다』며 『헌법은 개인이 의학의 도움으로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나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 자체는 반대하지 않고 그 대신 이 문제는 각 주 당국과 유권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리건 주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법」에 따르면 불치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의사를 표시할 능력이 있는 환자들은 의사에게 극약처방을 요구할 수 있고 엄격한 조건이 충족되면 안락사 시술이 허용된다.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가톨릭에서는 법안 발의 단계에서부터 반대운동을 펼쳐왔고 만일 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결코 자살과 안락사를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미국 주교단은 이미 전국 1천2백 개 가톨릭계 병원에서 안락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고, 법안 반대를 위해 1백만 달러 이상을 모금해 운동을 벌여왔다.
가톨릭에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교황 비오 12세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경우 생명의 연장 장치 제거에 대해 수긍하기도 했다.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이미 35개 주에서는 안락사 금지 판결을 내린 바 있으나 대체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의료기구의 사용을 중지하는 소극적, 비 작위적 행위는 40여 개 주에서 허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번에 적극적으로 극약처방에 의해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작위적 행위로서의 안락사가 허용됨으로써 안락사에 대한 법적 허용문제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것은 지난 해 9월 호주에서다. 호주 노던 테리토리 주는 말기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의사 3명의 찬성을 받으면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채택해 4명의 말기 환자들이 안락사했다.
하지만 호주 하원은 그해 12월 이 법안을 무효화하는 반 안락사법을 통과시켰고 올해 3월 25일 상원에 이어 27일 호주 총독이 이 폐지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결국 안락사 허용법은 채 1년도 안 돼 폐기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라 대부분 금지하고 있으나 네덜란드에서는 부분적, 제한적으로 허용돼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3천6백여 명이 안락사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안락사 관련법은 없으며 안락사 의사에 유죄 판결을 내린 판례가 있다. 다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거부하는 자연사는 폭 넓게 인정된다.
한국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 연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강해 실제 안락사를 고려하거나 적극 찬성하는 의사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오리건 주에서 최초로 안락사가 합법화됨으로써 그동안 안락사에 대해 수 년간 지속되어온 논쟁은 합법화의 방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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