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에는 쏘가리, 누치, 배가사리 등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는 청정 어류들이 남아 있었다. 이 귀한 물고기들이 눈을 까뒤집고 사람들을 원망하듯 강물에 둥둥 떠 흘러다니고 있었다. 팔뚝만한 메기와 붕어 등 웬만한 오염에도 눈 깜짝하지 않는 어종마저 견디지 못했다.
지난해 6월 11일 하루에도 수천 명이 찾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한탄강 국민관광단지 앞 한탄강. 전곡 6리에서부터 청산면 대전리 간 약 2km사이 강물 위로는 붕어 잉어 등 수십만 마리 물고기들이 물 위로 하얀 배를 드러낸 채 떠올랐다.
건져낸 물고기가 자그마치 1t 트럭으로 3대 분량. 한반도에서 드물게 맑은 물을 간직하고 있던 한탄강에는 쏘가리, 누치, 배가사리 등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는 청정 어류들이 남아 있었다. 이 귀한 물고기들이 눈을 까뒤집고 사람들을 원망하듯 강물에 둥둥 떠 흘러 다니고 있었다. 팔뚝만한 메기와 붕어 등 웬만한 오염에도 눈깜짝하지 않는 어종마저 견디지 못했다.
사고의 원인은 가뭄 끝에 비가 내리자 지천인 신천 상류 쪽의 염색 피혁공장들이 몰래 폐수를 흘려 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 후 정부에서는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동시에 한탄강 유역 오염업체 실태를 조사하고 몰래 폐수를 방류한 업자들을 속속 잡아들였다. 국회에서도 물 오염 방지를 위한 대책이 논의됐고 앞다퉈 환경보호의 기치(?)를 높였다.
항상 그래왔듯이 물고기 떼죽음 사건 후에도 앞다퉈 관계자들을 질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사고의 원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한탄강에는 단속의 눈길을 피해 여전히 폐수가 방류되고 있어 일부 지역은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폐수가 볼썽 사납게 흘러 다니고 바닥 아래를 막대기로 휘저으면 검은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나온다.
임진강 유역 정화대책 본부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10개월 간 총 4백55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총 1천9백94차례 단속에서 22.8%가 적발된 것이다. 이는 전국 평균 위반 율 6.6%의 무려 3.5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결국 지역업체들의 열악한 수질오염 방지시설 설치 실태와 무분별한 무단투기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성행하고 떼죽음 사건 이후에도 결코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래 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탄강과 임진강에서는 쏘가리, 메기, 뱀장어, 모래무지, 참게가 많이 잡혔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질 오염으로 이 같은 1,2급수 어종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3급수 이하의 수질에서도 용케 견디는 잉어와 붕어, 다슬기 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생계 위협까지 받고 있는 지역 어민들은「이처럼 1,2급수에서 서식하던 민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강 상류지역인 동두천시와 포천군, 강원 철원군 등에서 유입되는 공장 폐수와 생활 하수로 강이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하천 중 1급수의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14.6% 정도에 불과하다. 환경부가 올 초 제작한「96년 환경통계연감」에 따르면 전국 하천 수질 측정망 3백9곳 가운데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1미만 1급수 수질을 보인 곳인 1백42군데이다.
1급수는 간단한 정화 처리만으로도 수돗물을 생산할 수 있는 맑은 물을 말한다. 5대강 중 가장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는 한강 수계는 전체 측정 지점 1백10곳 중 22.7%인 상류 25곳이 1급수 수질을 보였다.
한탄강의 경우 지천인 신천이 BOD 42.2로 45.5인 인천 굴포천과 같이 완전히 썩은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이 민간단체로서는 처음으로 한탄강과 신천의 수질 및 생태계에 대한 학술조사를 벌여 펴낸 75쪽짜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탄강 상류가 2등급의 수질을 유지하다가 신천이 유입되면서 5급수 이하로 수질이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역별 생물 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이 한탄강 상류지점이 4.5ppm이던 것이 한탄강 국민관광지에서 18.9ppm으로 크게 나빠졌고 신천 하류는 무려 32ppm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신천 하류의 도금과 가죽제품 처리 등에 쓰이는 중금속인 크롬의 오염도는 상류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탄강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의 비극은 예고된 것이었다. 30여 년 전부터 상류지역에 각종 공해업체가 난립해 왔지만 당국은 주먹구구로 일관해왔고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만 높였지 근본적인 대책은 수립하지 못했다.
물론 다른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한탄강 오염 문제도 간단한 몇 가지 처방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지천과 지류, 물줄기 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깨끗한 물 중 하나인 한탄강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물 위로 떠올랐던 물고기들의 제2, 제3의 떼죽음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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