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 24대 왕 헌종이 성균관의 선비들을 훈계한 유명한 빗 이야기가 있다. 성균관에는 국가의 지도적 관리를 양성하기 위하여 둔 진사 2백 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탁상공론으로 천하경륜만 입으로 외칠 뿐이었으며 자기 자신들의 생활은 무질서하기 짝이 없었다. 수신이라는 덕목은 마음속으로만 하는 모양인지 자기 몸은 불결한 채로 의관도 단정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으로 도리어 속세를 초월한 청년 선비로 자랑을 삼기까지에 이르렀다.
헌종은 성균관 선비들의 그러한 사생활의 폐단을 고치려고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하루는 성균관 유생들의 머리 빗는 빗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재 있는 모양 그대로 즉시 거두어 오라』그리하여 2백 명의 빗이 어전에 이르자 왕은 한 개 한 개 검사했는데, 전부가 때가 낀 더러운 상태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한 개의 참빗만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헌종은 이 빗의 주인에게 상을 내리고 칭찬했다. 『선비들의 수양이 수신에게 비롯해서 평천하에 목적이 있을진대 그 첫 걸음인 제 몸 하나 깨끗이 못하면 그 학문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제 머리 빗는 빗 한 개 깨끗이 못해 두는 자가 어찌 인의예지의 모범이 되겠느냐?』이런 왕의 꾸짖음에 2백 명의 선비들은 모두 머리를 들지 못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라테라노라는 곳에 대성전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온통 성전에 관한 말씀들이다. 특히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 관한 내용이 있다. 유대인들의 축일 중 하나로「과월절」을 들 수 있다. 이 큰 축제일을 맞아 유대인 약 2백만여 명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외국에 사는 교포 유대인들도 평생소원이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것이었으므로, 이 축제 때 성전으로 몰려들었다.
19세 이상의 유대인들은 반세겔의 성전 세를 바치게 되어 있었다. 반세겔이란 이틀분의 노동자 품삯이다. 외국돈 아닌「세겔」로만 바치게 되어 있었다. 교포 유대인들은 각자 자기 사는 나라의 돈을 소지하고 있었으므로 세겔로 환전해야 했다. 이 환전의 편의를 위해 성전 뜰에 환전상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정당한 환율에 의해 돈을 바꾸어 준 것이 아니라 엉터리없는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순례자들을 착취한 결과가 되었다. 이런 성전의 세속화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시며 탁자를 둘러엎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도 꾸짖으셨다. 성전 뜰에는 환전상 외에 짐승 장사들도 있었다. 순례자들은 무사히 성전에 도착한 것과 여러 가지 이유로 감사드리려고 감사제를 드렸다. 감사제를 위해서는 제물로 쓸 짐승이 필요했다. 멀리서부터 짐승을 데려올 수 없었으므로 성전 뜰에서 파는 짐승을 사는 것이 편리했다. 그러나 율법에 제물은 반드시 흠없는 것이라야 하며 그러기 위해 성전 관리들이 검사원을 두고 밖에서 사가지고 온 짐승은 이리저리 트집 잡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배의 값을 주고 성전 뜰 안에서 사야 했다. 그런데 그 장사는 성전 제사장들이 주관했다 한다. 이는 독점이요, 폭리요, 도둑질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들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소와 양은 비교적 부유한 이들이 살 수 있는 제물이었고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이었다. 예수님은 소와 양은 채찍으로 모두 내쫓으셨지만 비둘기 장수들에게는『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나무라시기만 하시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진 않으셨다. 어쨌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를 용납치 않으셨다. 이처럼 4복음을 통틀어 예수님은 딱 한번 화를 내셨다.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성당은 똑같은 것이다. 구약의 성소는 신약의 성당 부분이요, 지성소는 제단 부분, 결약의 궤는 성체 감실을 뜻한다. 성당 중에서 특별히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큰 성당을 교황청에서 특별히 허락하는 경우 성전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오늘 기념하는 라테라노 성전이 그렇고 베드로 대성전, 바오로 대성전도 있다.
성당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첫째로, 성당은 하느님이 계신 집, 기도의 집이므로 경거망동을 하면 안 된다. 『나의 성소를 어려워하라』(레위기 26, 2). 큰 소리로 떠든다든지, 노출 심한 옷차림 등은 금한다.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장소로서의 품위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최소한 옆 사람의 기도 분위기를 깨뜨려선 안 되겠다. 둘째로,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꼬린 전 3,16)『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꼬린 전 3,17). 그러므로 잦은 고해성사와 영성체로「내 몸 성전」을 항상 정화해야 한다. 예화에서의 진사들의 빗처럼 더럽혀져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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