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를 다하고 평안하게 하느님께 가셨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70 나이에도 아직 철이 안 들었는지…….」
혼인한지 56년만인 지난 6월 중순 췌장암으로 부군을 떠나보낸 할머니는 고인이 생전에 7남매를 두고 다복하게 생을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경기도 양평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워낸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이제 스스로의 먼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11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청량리 성 바오로병원에서는 암, 백혈병 등 현대의학으로 치유할 수 없었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사별가족들을 위한 모임이 마련됐다.
매년 한차례씩 올해로 6번째 열린 사별가족모임은 성 바오로병원 외에도 11월 15일 강남성모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사별 가족들이 서로 아픔을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되는 자리이다.
이날 모임은 죽은 이의 영복을 비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작됐다. 환하게 밝혀진 수십 개의 촛불 옆으로는 고인들의 영정을 나란히 모셨다.
미사를 집전한 원목실장 고바오로 신부가 영정을 향해 분향할 때 가족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피어오르는 향 연기에 가족들은 슬픔과 미련을 함께 살라버리면서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서 이들을 당신 품에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실어 보내는 듯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가까이는 지난 달, 멀리는 2년 전 사랑하는 부인을 떠나보낸 이도 있었고 평생을 해로한 남편을 보낸 할머니, 친정어머니를 잃은 막내딸도 있었다. 이들은 서로의 깊은 아픔을 이미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서로 나눴다.
고인들의 병이 깊었던 만큼 남은 가족들의 아픔도 컸다. 부인을 잃은 지 채 한 달도 안 된 이보근(51)씨는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남은 아이들이 더 걱정이다. 3살짜리 둘째는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7살 된 첫째 딸은 아빠의 답답한 가슴을 아는지 「엄마는 하늘나라 갔어」라고 말해 보는 이의 눈시울까지 적신다.
『폐암이었는데 손 쓸 틈도 없었어요. 하반신부터 마비가 오다가 가슴께 이르러 멈춰 잠깐 안심했는데 그 날부터 열흘 동안 날밤을 새우다가 기어이 갔지요. 10년이든 20년이든 똥오줌을 다 받아내더라도 살아만 주었으면 했는데…….』
성 바오로병원 기획실의 현경숙 수녀도 지난 7월 8일 유난히 자신을 이뻐해주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사별가족이다.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직도 밤낮 없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현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요절했든 늙어서 돌아가셨든 언제나 죽음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짐작도 못하지요』
사별의 아픔을 누가 짐작으로 말할 수 있으랴. 하지만 가족들은 슬픔에만 싸여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돌아가신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곧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바오로신부는 미사강론을 통해 『모든 이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우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며 『옳은 일에 주리고 사랑을 실천하며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을 하느님은 심판 날에 가장 먼저 돌아보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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