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책임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50여 년간 분단을 겪어 왔다. 이 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정책 및 냉전체제에 편승한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분단의 과정에서 한반도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이 발생했고 우리 민족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강요되었다. 이 비극은 분단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오늘에 이르러서도 계속되고 있다. 민족의 분단은 극복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 과제는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는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그 일차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민족사는 민족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을 요청하고 있다.
새 대통령의 임기는 향후 5년, 2002년까지로 되어 있다. 이 동안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고 북한의 국내 사정은 또 어떻게 변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변해서는 아니 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인류애에 기반을 둔 민족문제, 민족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주도권의 확보, 대통령의 책임에 대한 것들이다.
◆인류애에 기반한 민족 이해
민족은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며, 민족에 대한 이해도 인류애에 기초하고 있다. 인도주의는 현실정치보다 근원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은 현실 정치에 관한 문제에 우선하여 인도주의의 원칙을 존중하며 실천해야 한다. 인도주의의 원칙에 설 때 진정한 민족화해도 가능하다. 인도주의와 인민의 생존이 체제의 유지나 현실 정서보다 중요하고 선행하는 일임을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 이 인도주의적 원칙은 천명만 되어서는 안 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선언적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실정치도 인도주의의 원칙에 설 때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기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인도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사실상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주의는 이른바 현실정치에서 즐겨 사용하는 「국민적 합의」보다 선행하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유도되거나 이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이 때문에 새 대통령과 새 정부는 남북한 간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도 인도주의적 원칙을 우선 존중해 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현실정치를 들먹이며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선의의 노력을 규제하거나 조정하거나 이용할 생각은 포기되어야 한다.
◆민족문제 해결의 주도권 확보
남한과 북한의 문제는 인류사적 문제임과 동시에 민족적 문제이다. 오늘날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북한의 문제임과 동시에 남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간의 대화를 통해서 확보해 온 여러 결과들을 확인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남북간의 합의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1991년에 만들어진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서가 작성된 이후 남북한 어디에서도 합의된 내용들이 실천된 바가 없다. 여기에는 남북한간의 평화와 인도적 교류, 투자보장을 비롯한 경제적 교류 등이 언급되어 있다. 새 대통령은 남북한간의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에 앞서서 이 합의서의 내용만이라도 남북한의 사회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북한에서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남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현재 북한을 엄습하고 있는 기아의 해결을 위해서도 우리 민족의 이니시어티브가 필요하다. 「기아」라는 민족 문제를 민족 스스로가 풀어 나가기를 꺼려할 때 통일과 민족화해에 관한 이니시어티브는 강대국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이익이 아닌 그들의 이해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남북문제는 기본적으로 민족문제이기 때문에 민족 내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남북문제는 워싱턴이나 뉴욕에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외교에 있어서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기아문제 해소를 위한 지원
지금 북한에서는 심각한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 기아문제는 단순히 자연재해의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아로 인해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일은 인도주의의 기본인 것이다. 기아의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규명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북한의 기아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현재의 상황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보류할 수 있다는 변명의 이유로 작용해서는 아니 된다. 정부는 대북 지원 문제를 직접 주도해 나가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정부 대 정부의 직접 지원 대신에, 대북지원의 창구를 준정부기관인 적십자로 단일화하여 이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이 창구단일화 정책에 의해서 종교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노력이 사실상 제약을 받고 있다. 이는 종교계와 정부가 구별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특성을 무시하고 정치권에 종교인의 선의를 예속시키는 좋지 모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계가 대북문제에 있어서 종교를 이용한다는 비난의 여지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북한의 동포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돕고자 하는 다른 대다수 국민의 선의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는 대북지원을 직접 주도할 뿐만 아리라, 그 창구를 다원화해야 한다. 정부는 종교계의 직접 지원을 허용하고, 이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북한에 대한 민간지원을 유도하고 장려하기 위해서 정부는 맷칭 펀드식의 운영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대북 지원을 위해 민간단체가 모금한 금액에 비례하여 정부에서 이에 대한 장려금 내지 지원금을 모금한 단체에 추가로 지급해주는 일이다. 이는 대북지원을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며, 민간의 활동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 정부에서는 북한 주민들과의 정서적 문화적 재일치를 위해서 민족화해를 위한 종교계의 노력과 남한에서의 교육활동을 적극 지원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해결에 있어서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하다고 생각된다.
아무쪼록 새 대통령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다지고 가져오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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