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아가 다시 늘고 있다. 국민 소득 1만 불 시대에 살면서도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진단해 볼 때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해서, 태아가 장애아라 해서 쉽게 내다 버리는 풍토 속에서 결코 건강한 가정이 자라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결실로 태어난 「성가정입양원」이 최근 국내 입양 1천 건을 돌파하는 큰 성과를 이룩했다.
혈통이 같지 않은 양자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토양을 고집스레 개간해 1천여 가정에 우리 아이들을 양육토록 한 성가정입양원 원장 김영화 수녀를 통해 「국내 입양 실태와 개선점」을 3차례 걸쳐 들어본다.
모든 어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생존을 위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보호는 가족을 중심으로 제공되어지기 때문에,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꼭 필요하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삶을 시작하는 곳으로 아동의 초기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따뜻한 애정적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할 때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아동-사회 연결매체 ‘가정’ 사회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
가정은 더 나아가 보다 큰 사회조직과 아동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매체가 되어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어린이가 그가 태어난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이 어린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마다 약 5천여 명의 아동이 이러한 국가적 책임을 필요로 하는 요보호 아동으로 발생하고 있다.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에는 가정위탁보호, 시설보호, 입양, 그리고 최근 들어 사회복지 전반에서 일어나는 탈 시설화 경향에 따른 소공동체 형식의 그룹홈 서비스 등이 있다.
가정에서 자랄 수 없을 땐 보호책임은 국가에 있어
요보호 아동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 입양은 영구적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아동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입양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때로는 잘 자라오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을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 아동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영구적으로 갖게 해준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크게 관심 가지고 키워가야 할 프로그램이다.
「제사상속」 사상 영향 커
가족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조상숭배와 제사상속 사상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조상으로부터 받은 가통을 자손에게 전하여 단절시키지 않는 것은, 조상에 대한 최대의 책무라고 여겨 왔다. 이러한 조상숭배와 제사상속의 사상은 혈연집단인 씨족사회를 발달시켰던 계기가 되었다.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가계의 영속이 기본적인 가치가 되기 때문에 상속제도와 함께 양자제도가 대두되었다. 우리나라 전통적 양자제도는 제사의 계승을 중심으로 하는 위가 양자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일찍이 종법제의 영향을 받아 매우 공고한 가본위 양자제도를 구축하였고, 종법제에서는 가계를 계승하는 자가 반드시 남성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종법제 사회에서 양자제도의 중심의 입양제도가 현대적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은 한국전쟁 기간에 발생한 전쟁고아와 혼혈아의 복지를 위해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대한 사회복지회의 전신인 한국 아동양호회가 해외 입양을 알선함으로써 비롯되어 1996년 말까지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된 아동은 총 18만9천6백56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그 중 해외 입양은 13만6천4백29명으로 전체 입양의 70ㆍ9%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입양의 약 50%(7만3천명)이 1982년 이후에 알선되었고 현재에도 매년 2천 명 이상이 해외로 보내지고 있고 그 중 60~70%가 미국으로 입양되는 실정이다.
같은 시기 동안 국내 입양은 5만3천2백27명으로 전체 입양의 28ㆍ1%를 차지하고 있다.
입양부모 중심의 입양, 아동중심 입양 절실
입양은 아동을 위해 영원한 대리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아동의 복지, 욕구, 이익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 또한 입양은 아동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의 입양현실은 입양부모 중심으로 업무가 수행되고 있는 실태이다.
이러한 점은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실무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국내 입양 입양부모에 대한 반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흠없는 아이만 찾아 장애아는 찬밥 신세
한국의 대부분 입양 부모들은 건강하고 예쁜 아동을 선호하고, 친부모의 배경을 중시하고, 주위의 반응을 두려워해 공개입양보다는 비밀입양을 선호하고, 장애나 질병이 있는 아동의 입양기피, 남아보다는 여아를 선호하고, 불임에 대한 정신적, 사회적 해결이 안 된 상태로 입양을 통해 가정이나 부부문제로 해결하려는 입양동기, 가입 시기에 맞춰 아동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 신청절차나 구비서류에 대해 까다롭게 느끼고, 입양사실이 드러날까 봐 가정방문을 꺼려하는 것, 죽은 자식을 대신해서 입양을 하려는 태도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혼부모의 자녀가 가장 많이 입양되고 있는데 1996년의 경우 전체 입양아의 85ㆍ3%가 미혼모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양아의 나이는 국내 입양의 경우 비밀을 감출 수 있는 나이를 선호함에 따라 1개월 미만이 전체의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기르는 재미로 입양 추세 남아보다 여아 선호
입양아의 선호 성별은 1990년을 기점으로 하여 대를 잇기 위한 남아선호에서 여아선호로 바뀌고 있는데, 그 이유가 여아가 양육하는 기쁨을 더 느낄 수 있게 하고, 아기자기하고, 커서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작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키워 자녀에게 노후를 기대하던 과거의 자녀관이 단순히 기르는 재미로 부모가 되는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전통적 양자제도가 현대적 의미의 입양이 뿌리내리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입양이 시작된 이후에도 국내 입양은 입양부모의 필요나 욕구에 의해서 아동이 선택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존중이 바탕될 때 입양서 제외되지 않아
진정한 의미에서의 입양대상 아동은 가정을 필요로 하는 모든 아동들-(성별이나 건강상태와 상관없이)-이 되어야 하고, 입양부모는 입양아동에게 베푼다는 의미보다 한 인격체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완성시키는 내 요구조건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을 함께 채워 간다는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즉 입양은 인간존중 사상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럴 때야 비로소 입양에서 제외되는 아동들이 이 사회에서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 어느 미혼모의 일기
“우유 달라고 우는 얼굴, 날 보며 웃는 얼굴,
하품 하는 조그마한 입, 손과 발…….
내가 널 기억하려고 얼마나 만지고 했는지…….”
나의 아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하얀 편지지가 유난히도 크게 보이는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니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변명이라도)이 있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구나.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네 마음의 궁금증의 일부가 풀리길 바란다. 편지로써 널 먼저 대해야 하는 게 가슴 아프다. 「용서」라는 단어보다는 「이해」의 마음이 생긴다면 더 바랄게 없겠구나.
네 아버지와 처음 만난 것은 91년 7월 말이었어. 23, 24살 여름에 만났다. 여고 때 걸스카우트였고, 남고와 연합을 했는데 그분은 보이스카우트였단다. 학교 재학 중에는 보지 못했고 졸업하고서 모임이 계속 연결되는 중에 그분과 만났어. 91년 12월 22일 동문의 밤 행사 때 두 번째 만남이었어. 그분은 날 늘 따사로운 눈으로 보곤 했어. 귀엽다는 말과 함께.
난 키도 156cm, 몸무게도 42kg 우리 후배들도 여동생 하자고 할만큼 작고 야위었단다. 하지만 그분은 183cm, 76kg에 모든 사람들이 늘 그분을 따랐단다. 몸도 건강했지만 언변이 능해서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지. 그리고 사람들을 너무 자기와 같은 마음인 줄 알고 잘 믿고 친구를 위해, 후배를 위해서는 자기가 손해를 봐도 웃으셨으니까. 그래서 나와 많이도 싸우기도 했어.
그분은 누님 3분, 남동생 1명,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 식구와 주위의 많은 기대를 받았단다. 결국은 그 기대의 짐 때문에 숱한 방황을 했단다. 어머니의 기대는 늘 그분의 힘겨운 짐이었단다. 남편에 대한 실망이 아들의 기대로 변한 거였으니까.
그분도 늘 자기 환경, 집에서의 탈출을 꿈꾸었단다. 어깨에는 늘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있었단다. 날 만나면서 평안과 위안을 찾으려고 했었어. 그래, 지금 생각하면 그분과 함께 한 시간들이 가장 편했단다.
하지만 주위 어른들은 우리를 늘 힘겹게 했단다. 아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모두 나에게로 왔단다. 우리 집의 반대와 그분 집의 반대, 어머니들의 싸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시기였단다. 누나들의 반대는 날 더 힘들게 했으니까. 결국 아버지의 병 악화와 어머니의 쓰러짐으로 그분은 마음을 새롭게 먹어야 했단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을 위해서 살면서 잘 적응하리라 서로 믿었다. 서로를 사랑하니까 더 이상 힘든 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로에게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헤어지기로 했어. 추억을 간직한 채.
92년 9월에 모든 걸 정리하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빌었다. 행복하게 살라고, 난 지금도 그분이 뜻한 바를 모두 다 이루도록 빌고 있다.
네가 내 속에서 숨 쉬고 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분을 닮은 애기를 낳아서 함께 사는 꿈을 늘 꾸었단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 이해 해 줄 수 있겠니?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내 마음을. 너와 지낸 3일은 내 인생 어느 부분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란다. 우유 달라고 우는 얼굴, 날 보며 웃는 얼굴, 하품하는 조그마한 입, 손과 발, 내가 널 기억하려고 얼마나 만지고 했는지 너는 느끼지 못했을 거야. 너의 가정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의 사라짐과 기쁨의 마음이 교차했단다. 좋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넌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자랐니? 이 글로나마 너를 만날 수 있는 걸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네가 어릴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가까이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더 없이 기쁘구나. 자라서도 하느님의 품에서 영안과 행복을 찾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좀 더 일찍 그분을 알고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구나. 나의 생활도 하느님께 의지하고 가까이 가려고 노력 중이야. 하느님은 너와 나를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니까.
아가야! 사랑의 마음과 겸손의 미덕을 지니고 살기 바란다. 지금의 생활에 행복을 느끼며 현실을 이겨내는 용기를 바란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있게 지내길 바란다. 아가야! 행복과 건강과 주님의 평안이 함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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