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군중들은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사도 2, 37)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각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 2, 38)하고 권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군중은 세례를 받았는데 그 날에 믿는 사람들이 삼천 명 가량 늘어났다(사도 2, 41 참조).
사도행전 2장이야말로 전향하여 주님 예수그리스도께 믿음을 가지고 승복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의 용서를 받고 성령의 선물로 채워진 사람들에 관한 가장 적나라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세례성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세례성사는 그 희망자를 주님 예수그리스도와 만나게 해주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런데 그분은 다름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요한 1, 33)이시다. 사도들이 시행한 세례성사라 해도 실제로 그 성사를 베푸시는 분은 바로 주님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 뿐 아니라 성령을 주신다(요한 7, 37-39: 19, 34: 로마 5, 5: 사도 2, 17). 그래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는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성사이다.
하지만 세례를 베푸시는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루가4, 18: 사도10, 38참조)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1 고린 15, 45)이시다. 그분과 성령은 애초부터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세례성사는 그 희망자를 성령과 만나게 해주는 하나의 사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28, 19-20)하고 직접 명령하신대로 세례는 그렇게 베풀어져 왔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러한 점을 중요시했다. 그러기에 맨 처음 믿음을 가지고 받게 되는 세례성사는 『성령에 의한 쇄신과 재생의 목욕』(디도3, 5 참조)으로써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자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도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교리서 1213조 참조)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례식이나 또는 부활성야 중에 성령청원기도 (Epiclesis)를 바치는 가운데 세례수를 축성하면서 성자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그 물에 내려와 세례받는 사람들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게』(요한3, 5)해 주시기를 청한다(교리서 1238조). 그리고 세례예식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결국 세례성사라는 사건은 한 인간을 그리스도교 영성이라는 텃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해주시고(로마 8, 9참조) 성령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어 전향하게 해주시며(1 고린 12, 3 참조)물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해 주시어 성령과 성령의 선물로 채워주시기 때문이다(사도 19, 1-7 참조).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후 자신 안에서 생활하시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열어 놓는 삶만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겨자씨와 같았던 신앙의 씨앗을 새가 깃드는 겨자나무와 같은 굵고 커다란 신앙으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영성이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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