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변함없건만 요즘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가 힘겹게만 느껴진다. 감원 퇴직당하고 기운 없는 교우 가장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직장을 구하느라 재수 삼수를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사업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봉급생활자는 그들대로 불안감과 박탈감뿐이니 신명날 거리가 없다.
이런 판국에 기운이 펄펄 나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약간 이상한 사람일는지…….
◆자업자득의 국가 현실
국제 선진국 대열인 OECD에 가입했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더니, 1년도 되지 않아 거품이 벗겨지자마자 즉시 국가 경제가 부도가 나게 되었다. IMF의 긴급 재정 수혈을 받기 위해 불평등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는 국치의 참담함 앞에 할 말을 잊는다. 오늘은 어느 기업이 부도를 낼 것인지 불안하기는 여전하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토론회의 저명한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그러나 밑줄기 하나만 잡아끌면 호박넝쿨은 통째로 끌려오는 것, 민중적 직관으로 보는 국가 경영 실패의 총체적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5년 전 대통령을 잘못 뽑은데서 비롯된 것으로 사필귀정이요 자업자득이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원자력 발전소」와「전술핵」도 구분을 못하는 무지한 상태에 있었다. 기본적 무지의 상태가 바로 텔레비전 토론을 끝까지 거부했던 이유라는 것은 기자 초년생도 아는 문제다.
그런데도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후보의 자질과 능력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지 않고, 지역이기주의를 부르짖으며 대통령을 선출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복음정신으로 판단해야 하는 신앙인도 소용없었다.
당시 왜곡 편파보도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서 국민을 기만했던 언론과 유권자들은 바로 오늘의 국가 경영 부도 사태에 원천적으로 가담한 동조자인 것이다. 그러고도 오늘에 이르러 일부 언론은 5년 전 자신들의 행각을 회개치 않고, 공정한 판관인양 또 다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21C를 새롭게 시작하며
이렇듯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이 경제와 안보, 교육 문화 등 국가 경영 전반의 중요한 지렛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하여 IMF 사태라는 엄청난 과외 수업료를 낸 것이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5년 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틀린 시험문제를 온전히 익혀두는 것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21세기란 언어 앞에 새롭게 느껴지는 시대의 징표가 있으니 그것은 지난날 경제 발전과 성장을 절대 신앙으로 여겼던 신화의 우상이 20세기로 끝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다』는 정신의 비만으로부터 살아나기 위해서는 살빼기가 불가피하다. 배부른 돼지의 삶에서 맑은 영혼의 소크라테스를 추구해야 할 시대가 바로 21세기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더욱 강조하고 신장시키고, 나아가 정치와 경제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통령 후보를 선별하는 시각에 있어 중요히 관찰해야 할 것이 바로「생명과 평화, 즉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대선 후보 가운데 가톨릭신자가 3명이거니와, 「누가 얼마나 생명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가?」는 그들의 신앙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평화를 부정하는 반평화의 상태가 분단이며 분열이며 불화이다. 이것이 교묘히도 평화를 위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남북 분단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산가족 상봉조차 가로막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자세만이 국가를 지키고 평화를 보장 받는 길로 생각해왔는데 그 결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생애를 정리해야 하는 때가 되었는데도 고향 땅도 밟아보지 못하는 실향민의 고통뿐이다. 남북의 적대적 상황과 그것을 강조하는 정치적 입장이란 바로「위장된 평화」, 「반평화」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대북 정책에 있어 극우 보수적이고 강경 기조의 정당이나 후보는 평화의 신봉자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버려야 할 지역감정
영호남 지역 갈등도 반평화의 상태다. 지역감정을 조장해 득을 보려 한다면 그것은 말할 것 없이 지역단결을 가장한 패권주의 분열론으로서 위장된 평화요 반평화요 반신앙적인 것이다. 지역감정이나 차별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한번으로 족하고 우리는 그나마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패권주의 못지않은 반평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소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나 다수의 결정이 곧 진리는 아니다. 각자의 이익이 결부되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이 여론이 될 때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합법적 폭력과 같은 것이 된다. 후보들마다 보수 기득권 세력에 잘 보이려 하지만 그것이 신앙적으로 볼 때 정의도 진리도 아닌 위장된 평화일 뿐인 것이다.
다음으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해 무감각한 후보를 구분해내야 한다. 그는 반평화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건설 지상주의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왔다. 대선 후보자의 생명과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원자력 발전소 문제이다. 소비주의시대는 전력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원전을 건설하게 만든다. 가공할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선전하며 당연시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에 폭탄이 떨어지면 그것이 원자폭탄이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진정한 평화주의자는 원전에 대한 미래 대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
우리 신앙인도 믿지 않는 이와 함께 동네시장을 이용한다. 세상 사람들의 공동체에 우리도 속해 있는 것이고 따라서 공동선을 위한 목적의 선거를 잘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비록 지역감정과 패권주의로 후보를 구분하더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능으로 있어야 하는 우리는 복음정신으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선거에 임할 수 있어야 하겠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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