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에서 시내버스로 두 정류장 남짓 거리, 키 작은 판잣집들 가운데 끼어 앉아 있는 조그만 2층집. 「기차길옆 공부방」은 오래된 탓인지 삐걱대는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면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손님 많은 부잣집 사랑방 같다.
공부방의「하나만 빼고 다 깨진」유리창에는 두툼한 비닐이 대신 끼워져 있고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폭이 좁아 외나무다리처럼 한 사람이 오르면 맞은편에서는 뒷걸음질을 쳐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이곳으로 달려온다. 이모, 삼촌과 함께 하는 공부는 즐겁다. 이모들은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닥달하지 않고 선생님보다 친절하게 산수 문제를 풀어준다. 삼촌들은 아무리 목을 잡고 매달려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조금은 지겨운 산수 공부를 하고 나면 친구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는 놀이도 한다.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기차길 옆 공부방」이 만석동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10년.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거치고 산업화,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줄곧 만석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노동일을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오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판잣집들 사이, 연탄재와 쓰레기가 뒹구는 골목길에서 하루해를 보내야 했다.
그 또래 아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따뜻한 보살핌, 부모ㆍ가족간의 사랑, 깊은 관계, 때로는 엄한 훈육까지도 아이들에게는 결핍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는 물론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가질 수 없었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끼리 모이던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나았다. 하지만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뒤섞이는 중학교 때부터는 빗나가고 엇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많은 아이들이 사춘기 예민한 감수성에 깊은 상처를 받은 채 떠돌았다.
만석동 아이들을 모두 공부방이 돌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부방은 내팽개쳐진 아이들이 마음을 다잡고 정을 붙일 수 있는 누추하지만 따뜻한 쉼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재개발, 철거의 삭풍이 가난한 이들을 때리던 80년대 말 몇 명의 운동가들이 만석동에 공동체를 만들었다. 「큰 이모」김중미(아녜스ㆍ35)씨 등은 아가 방을 만들었다. 그때가 87년, 이듬해에는 방과 후 방치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공부방이 문을 열었고 그 중간에는「다락방」이 생겼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풀무」라는 이름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지금 공부방에는 학년당 서너 명씩 중고등학생을 포함해 20~30명 정도가 찾아든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에 찾아오고 고등학생들은 일요일에만 모임을 갖는다.
큰 이모 중미씨는 이곳에서 동갑내기 최흥찬(바르티메오ㆍ35)씨를 만나 아예 눌러 살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현재 20여 명의 풀무와 실무진들이 교대로 아이들을 돌본다.
만석동에는 이제 주민도서실도 생겼고 조기축구회도 만들어졌다. 마을신문도 나오고 가출청소년들이 마음 편하게 잠시 쉴 수 있는 우리 쉼터도 있다. 공부방에서는 철따라 운동회도 하고 발표회도 하고 캠핑도 간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신부님들도 인근에 계셔서 도움을 준다.
하지만 당장 문제가 있다. 집이 무너질 지경이다. 시유지와 뒷집 할머니 땅을 걸쳐 세워진 이 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은 더 조급하다. 그리 큰 집이야 지을 수 있겠냐만 조그만 집이라도 공부방 식구들에게는 버겁다.
여기저기 손을 벌려 보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년 봄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모와 삼촌들은 걱정이 많다.
그러나 지난 10년이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듯 앞으로도 하느님은 이 조그만 아이들 공부방에 함께 하실 것을 믿는 때문인지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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