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노을…』
올 6월 25일 두만강을 건넌 후 7천㎞에 이르는 죽음의 대장정(본보 12월 7일자 보도)을 기적과 같이 이겨내고 12월 14일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강설미(10) 강림(8) 남매가 가사가 아름답다며 도피기간 중 즐겨 부르던 한국의 동요「노을」.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어하는 애틋한 사연이 담긴 편지가 베트남을 떠나기 전 성탄을 앞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배달돼 왔다.
한국의 고모(통일 강냉이 보내기 모임 간사)로부터 몇 차례 귀동냥한 후 이젠 고모보다 잘 부른다고.
「아빠와 크레파스」잘 불러
「아빠와 크레파스」를 유난히 잘 부른다는 설미는 남한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저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 평성시 평화고등중학교 1학년에 다닌 강설미입니다. 저는 평화인민학교 2학년인 동생 강림이와 남한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 먼 나라에 와 있습니다. 빨리 남한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남한에 가면 남한의 친구들과 함께 남한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조그만 소망을 담아 보내고 있다.
아버지 강경호(39)씨를 따라 북녘 땅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 어린 남매는 어린이로서는 견디기 쉽지 않은 길을 노래로 달래려 했을지도 모른다.
고모들을 유난히 따르던 강설미, 강림 남매는 고모가 들려주는 한국의 동물원이나 놀이동산 등에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한국에서 살게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쓰고 있다. 자신들의 처지가 죽음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뛰어 놀고 싶고 함께 공부도 하고 싶다』는 두 남매의 말은 이들이 처한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두만강을 건넌 후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 숨소리 한번 크게 내보지 못하고 수시로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던 이들은 몇 달을 방에서만 갇혀 지내다시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두 남매의 일과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노래 부르기와 싸움이었다. 반 년이 넘는 도피 생활이 싸움조차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케 하는 놀이로 바뀌게 만든 셈이다.
동물원 놀이동산도 갈래요
평생 들어 보지도 못한 복음성가를 배우며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다는 두 남매는 베트남 국경을 넘을 때 전 가족이 위험에 처하자『하느님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저희 좀 살려 주세요』라고 눈물지으며 간절히 기도하던 상황도 전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 정부가 지정해준 호텔에서 구금 상태에 있던 이들 두 남매의 가족은 새로운 삶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 했으나 마침내 그리던 한국 땅에 무사히 안착,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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