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
당신은 지금 또 후회하고 계시겠지요? 사람을 만드신 것을 말입니다.
일찌기 당신은 창세기(6, 7)에서『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탄식하면서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여 무법천지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의인(義人) 노아와 그 일족만 배에 태워 살게하시고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렸습니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이 또 다시 악해져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 했을때 아브라함이 당신께 여쭈었지요. 『주님, 저 고을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 그 마을을 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당신은『의인이 단 열명만 있어도 그 열명을 보아서 그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끝내 그 도시를 불로 멸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이 세상은 당신이 보낸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때부터 온통 악으로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로부터 2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 세상을 끝장내지 않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보시기엔 아직도 이 세상을 쓸어버릴만큼은 악하지 않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의인이 열명은 넘는다는 말씀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이 모르는 또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여하튼 아직도 세상을 덮어버리지 않아 여태까지 살게해주시니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사람의 생명도, 이 세상의 목숨도 오직 당신의 자비에 맡겨져 있음을 다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P통신이 선정한 95년 세계 10대 뉴스를 보면 보스니아 내전,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프랑스 핵실험 재개, 옴교(敎) 東京지하철에 살인가스 살포, 오클라호마시티 정부청사 폭파, 체첸 내전 등 종족이나 이념, 종교 등을 내세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살인극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어른들의 탐욕과 증오가 일으킨 세계곳곳의 전쟁으로 무죄한 어린아이들이 한 해에도 수십만명씩 죽어가고, 낙태로 인해 세상빛도 보지못한 채 무참히 학살된 태아들이 수백만명이 넘는 것은 이 세상의 악이 어느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당신의 생명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악에 관한 얘기라면 구태여 멀리 물건너 딴나라 얘기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동네 형편을 보면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5층짜리 백화점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었습니다.
백화점의 붕괴는 인간양심의 붕괴였습니다. 썩은 양심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것이지요. 거기에는 인간의 부정과 불의와 과욕과 추악함이 숨겨져 있었지요.
또한 거기에는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생명경시 사고가 감추어져 있었고,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교활한 상업주의와 배금주의가 웅크리고 있었지요. 한마디로 현대판악의 집합체였지요.
이와 함께 전직 대통령 2명이 군사반란ㆍ양민학살ㆍ수천억원의 비자금 은닉 혐의로 감옥에 갇혀 세계의 톱뉴스가 되고 나라 전체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은 자업자득이겠지요?
이들이 지난날 저지른 불의와 부정은 마땅히 단죄되고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부 언론들과 집권층의 행태는 역겨움을 느끼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젠가 사람들이 간음하다 들킨 창녀 한 사람을 데려와 돌로 쳐죽이려 할 때『누구든지 죄없는 사람부터 그 여자를 돌로 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당장 그 여자를 돌로 쳐죽일 것처럼 기세당당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이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그래도『깨끗한 양심』을 지녔던 것 같습니다. 자신도 부끄러운 죄인임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더 구체적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는 비(悲)양심적이거나 반(反)양심적이거나 아예 빈(空)양심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은듯 합니다. 그들이 정치가이든, 기업인이든, 심지어 종교인이든 말입니다. 그것이 당리당략이건, 돈벌이나 인기유지를 위해서건 거짓은 거짓일수 밖에 없으며 위선은 끝까지 위선으로 남을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이 세상에 악이 많고, 인간이 감히 자기 주인에게 도전하고 이제 주인마저 대적하려는데도 아직도 참아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또 이렇게 96년 병자년 새해 새날을 맞게 해 주시니 당신의 관대함과 극진한 사랑을 찬양할수 밖에 없습니다.
96년은 UN이「빈곤 퇴치의 해」로 정했습니다. 물질적 빈곤은 가진바를 나눔으로써 퇴치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 빈곤은 무엇으로 퇴치할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사람들 가슴마다 당신을 채움으로써만 가능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새해 새아침에 당신의 영(靈)을 온 땅에 모든 사람의 마음에 보내시어 이 세상이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십시요. 그 길만이 이 세상이 살고, 사람이 사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해 주십시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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