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도시빈민운동
▩ 글머리
빈민운동은 근 사반세기(1969-1995)가 넘는 운동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방과 분단이후 독재정치지형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기층민중에 대한 탄압이 일관되게 관철되어 왔으며 경제성장 정책의 희생양으로 도시빈민이 양산되었다. 삶의 질 또한 억압구조에서 개선되지 못하고 삶의 자리인 주거권을 비롯해서 고용, 건강, 교육, 아동 청소년, 환경 등의 사회구조 모순이 심화, 고착되어 온 것이다. 이에 대한 도시빈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지속되어 빈민운동의 역사로 발전해 온 것이다.
▩ 빈민운동의 역사
도시빈민의 기원은 한일 합방으로 시작되는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일제의 토지수탈정책으로 인해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많은 농민들이 도시 주변에 몰려 집단적으로 거주한데서 부터 흔히 토착민이라 불리는 빈민들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식민지형 지주경영의 초과이윤 획득 과정에서 노동량의 상대적 감소결과로 생겨난 상대적 과잉인구로서의 농민실업자와 농촌빈민으로, 농촌을 떠나 생활방도를 다른 곳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들은 주로 도시 토착민으로 거주하면서 토목공사장의 막일꾼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 제1기(1946-1959)
이 시기는 도시빈민형성 제1기로 구분된다. 해방과 도시 미군정이 시작되고 분단이 형성되며 급기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비극의 시기이다. 한편 대기근이 발생하고 농지개혁이 실패하며 해외로부터의 귀환동포가 증가하고 귀속재산이 독점되며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경제 원조가 이루어지면서 민족의 운명이 굴절되는 결정적 시기에 속한다.
▣ 제2기(1960-1968)
이 시기는 도시빈민형성 제2기로 구분된다. 4.19혁명이 실패하고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짐으로써 굴절된 민족의 운명에 족쇄를 채우고 성장일변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이 성장정책은 농촌과 농민을 희생양으로 전개됨으로서 이농인구의 급증과 이들의 공식, 비공식 산업현장에서 임금 노동자가 됨으로 광범한 도시빈민회가 형성되었다.
▣ 제3기(1969-1979)
이 시기는 도시빈민형성 제3기이면서 도시빈민운동의 태동기로 구분된다. 점점 더 농촌이 피폐해짐에 따라 도시 주변으로 몰려든 농민들은 서울의 변두리 산동네나 뚝방 등에 판잣집을 세우고 거주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때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도시빈민들을 외곽으로 외곽으로 쫒아내는 정책을 펴다가 철거정책을 본격화하여 광주 대단지(성남시)에 서울의 철거민을 쓰레기차에 실어 내다 버리다시피 하여 거주지를 조성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토지대금 불하문제의 불합리성이 화근이 되어 광주 대단지 폭동사태가 터지게 된다. 여기다가 1970년 와우 서민아파트 붕괴 사건이 터지고 시민아파트 주민의 시청 앞 시위가 벌어짐으로서 빈민정책의 허구성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 현 빈민운동의 모태라 할 수 있는 1969년의 연세대학교 부설 도시문제연구소는 많은 주민조직 활동가들을 훈련시킴으로서 판자촌 등에서의 주민조직활동이 전개되었다.
▣ 제4기(1980-1989)
이 시기는 도시빈민운동의 확산기에 해당된다. 광주 민중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제5공화국은 빈민들에게는 무자비한 강제철거반이 자행하는 공화국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때부터는 빈민들이 살고있는 산동네를 독점 건설회사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즉 거대자본이 가난한 산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자본축적의 수원지로서 산동네가 파괴, 해체되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름하여 합동 재개발 방식으로 산동네 빈민들의 삶의 자리가 무차별 전면철거를 당하였으며 폭력을 수반하면서 빈민들에게 주거 고통을 가중시킨 시기이다. 한편 이 시기는 뿌리채 뽑히는 삶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철거당하는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철거반대투쟁에 들어간 때이다.
▣ 제5기(1990-현재)
이 시기는 빈민운동의 외형적 확산을 넘어 조직운동의 다양화와 서로간 연대가 활성화된 시기로 구분된다. 즉 영역별 조직화가 활성화되어 철거민들의 조직, 노점상들의 조직, 일용건설 노동자들의 조직, 산동네 공부방 활동을 위한 조직, 탁아활동을 위한 조직들이 80년 후반에 형성되어 꾸준히 자기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특히 삶의 단위인 지역을 중심으로 빈민지역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구 단위 혹은 동 단위 활동체를 조직함으로 지역운동의 토대를 형성한 것은 빈민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자치시대에 걸맞는 주민운동을 개발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시사해주고 있다. 한편 빈민운동 단체들 간의 협의를 위해 결성된 그간의 연대운동은 나름대로의 사회정책적 과제를 제기하고 여론화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일상의 고통을 더는데 일익을 담당해 온 것이다.
▩ 가난한 이들의 삶
도시빈민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정의된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도시지역 내의 가구와 소비지에서의 생활 상태에 의해 지칭된「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을 뜻한다. 도시빈민들을 특징 지우는 것은 단순히 열악한 주거형태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주거형태가 열악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의 소득이 낮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으므로 당연히 노동재 생산비용(주거비, 식비, 문화비 등)이 낮은 지역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지역에서 접하는 소위「노가다」들 이라든지 노점상, 파출부, 영세하청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이 모두 이러한 형태의 노동자들이며 빈민지역 주민들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직업은 모두 저임금에 강도높은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실업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해빙기와 장마 때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빈민지역이다. 이들에게는 이들의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서민용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개발 등을 통해서 지어지는 집들은 실제지역 주민들이 들어가 살 수 있기보다는 외지에 사는 돈 많은 이들의 기호에 맞도록 지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재개발은 오히려 가난한 현지 주민들을 내쫓는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의 재개발은 가난한 이들이 살 수 있는 싼 방을 계속 없애,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를 절대적으로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주거형태가 열악해 실제로 단칸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사는 가구가 많다. 그러니 당연히 자녀들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밖으로 나돌 수 밖에 없게 된다. 많은 빈민지역의 주민들은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맞벌이를 한다. 이들은 시설 탁아소에 자녀들을 맡길만큼 많은 탁아비 지출을 감당할 수도 없으며 자녀 문제 때문에 맞벌이를 그만 둘만 한 여유도 없다.
▩「빈민사목」으로의 응답
천주교 도시빈민회가 창립된 지 10년이 되었다. 천도빈은 천주교 사회사목단체로서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복음의 자발적 가난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이 내용의 하나는 크리스천 단체로서의 성격과 또 하나는 현세적 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의 억압된 삶을 타파하기 위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여 인간해방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천주교회의 사회교리나 한국 천주교회에서 발표한 일련의 사목교서를 통해 나타났듯이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라는 것이 천도빈 정신의 전제가 되고있다.
이러한 정신은 천도빈의 창립이 현실에 대한 응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목동에서 벌어진 강제철거였고, 빈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몇몇 천주교 신자인 활동가들이 이에 대한 현실적 응답으로서 철거투쟁에 참여하였다. 천도빈은 이 목동 철거투쟁을 계기로 창립되었다.
즉 천주교 신앙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목동 철거를 계기로 날로 확대되고 있는 도시빈민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 하고자 천도빈을 창립한 것이다. 따라서 천도빈은 종교적인 신앙행위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위한 조직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 1987년 4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도시빈민사목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도시빈민들의 생존권이 무참하게 탄압받는 시기에 이들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현실응답이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교회는 빈민사목위원회를 통해 도시빈민에 대한 적극적인 사목활동을 펼치도록 자극받은 것이다.
도시빈민사목위원회는 도시빈민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공청회 등을 열어, 도시빈민 주택문제에 대해 정책을 제시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맞이해서는 한국에서 아시아 사회사목연수회가「도시의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교회 되자」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렸다. 이는 교구가 스스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 연수회의 개막미사에서 서울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복음의 본질 자체이며 예수님의 생활과 말씀, 그분의 의미 자체, 따라서 그분이 교회에 지워준 사명 자체입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아시아 사회사목 연수회를 통한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90년대에 들어 한국 천주교회는 가난의 문제에 대해 그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천주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계속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난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의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 빈민사목의 전망
➊ 현장에 몸소 투신하여 사는 삶
천도빈 회원들 중 다수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이미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가난의 문제는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 때문에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거시적 분석은 이미 끝나 있다. 가난을 극복하고 비인간적인 상태를 인간적인 환경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 스스로들의 협동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대물림의 순환구조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자 스스로들의 협동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협력하기 위해서 현장에 몸소 투신하여 활동가로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빈민사목위원회가 추진중인 현장에 투신하는「바오로 계획」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선택을 분명히 하는 준비에 속한다.
➋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삶
현장에 몸소 투신하여 사는 삶만이 빈민사목운동의 전망이라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제자들의 경우도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에서 선택하였으며, 병들고, 앞 못 보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최우선적으로 대변하면서 사셨다.
이러한 모범된 삶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하는 삶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처지와 조건에 처하든, 물질의 풍요와 권력의 권위에 있든 최우선적 선택의 방향이 어디에 있느냐, 그 방향이 가난한 이들의 처지로 향해 있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의 참 연대관계가 형성된다 할 수 있겠다.
➌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
앞서 지적했듯이 90년대 이후 교회의 관심은 가난한 이들에게서 멀어져 있는 느낌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일관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잘못된 관심으로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관심이 빈민사목운동의 전망을 밝게 해줄 것이다.
▩ 글 맺음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가 더 어려운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나마 방값이 싼 산동네가 재개발로 해체되어 변두리 지하 셋방으로 흘러들고 있다. 직업문제, 자녀교육문제, 건강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인간다운 맛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없이 소외감만 더해가고 있다. 얼마 전 한국도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상태도 더욱 열악하며, 가정이 파괴된 무거주자들이 확산될 것으로 가난의 심각성을 염려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가난의 현실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느님은 가난이십니다」
가난 자체로 가난을 보고, 가난을 살며, 가난과 연대하고, 가난을 우선적 관심으로 하여 교회의 본질을 실현하고 가난속에 함께 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앞당기는 그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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