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은 문화체육부가 정한「문학의 해」이다. 94년 책의 해, 95년 미술의 해에 이어 막을 연「문학의 해」는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다소 밀려나 있는 듯이 보이는「문학」에 활력을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천주교회는 어느덧 2백여 년의 연륜을 지녔다. 교세는 신자 수 3백만을 넘어선 지가 벌써 몇 해 전이고「가톨릭」이라는 문패는 어느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그 위상은 높아져 있다. 그러나 과연 양적인 성장 만큼 한국 천주교회는 문화의 영역에서 복음화를 이루었는지는 의문시된다. 대규모 행사와 장중한 성당 건물이 가톨릭의 모두는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런 외형보다는 삶 속에서 만나는「문화」의「복음화」가 진정한 복음화의 목표이자 결실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고 미래를 예시하는「문학」의 영역을 복음화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문화 발전을 위한, 그리고 새로운 복음화를 앞당기는 한 가지 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학의 해」가 한국 가톨릭 문학의 부흥시대를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톨릭 문학은 무엇인지, 한국 가톨릭 문학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그 부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가톨릭 문학」이란 과연 어떤 문학이나 작품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가톨릭 작가가 쓴 작품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미리 그 본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며「왜냐하면 그 본질을 추상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이 문학에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톨릭 문학」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들은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구중서씨는「가톨릭 문학은 하나의 독립된 형식도 아니며 유파도 아닐 것」임을 전제하고 다만「가톨릭 신자인 문학인이 자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고 문단 속에서 활동하면서 가톨릭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작품에 내재케 할 때 그 작품들이 바로 가톨릭 문학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 문학 작품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그리스도교적인 문학의 요소를 보여준다 하겠다. 유럽에서 1500년대까지의 문학작품들은 대체로 성직자의 손에서 이루어진 종교적 작품들이었다.
근현대문학을 지나 한국 가톨릭문학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면 신앙 전파과정에서 발생한 천주가사들을 꼽을 수 있다. 이벽의「천주공경가」, 정약전의「십계명가」, 이가환의「경세가」등 한글로 된 숱한 작품들은 서민 대중들 속에 쉽게 받아들여졌고 그 내용은 주로 호교와 순교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서는 실제로「가톨릭 문학」은 문단에서 비록 하나의 유파는 아닐지라도 그룹의 비중을 띤 구체적인 집단으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1993년「가톨릭 청년」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문학운동은 그 작품 경향과 작가들의 구성에 근거해「가톨릭 문학」이라 불리웠고 문단에서의 그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문단의 중심을 이뤘던 정지용을 비롯해 최민순, 윤형중 신부는 신앙을 바탕으로 시작을 했고 이동구가 가톨릭 문예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1945년 8.15 이후 가톨릭 신자 문인들의 수는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구상, 김남조, 홍윤숙, 성찬경, 김지하가 시 부문에서, 한무숙, 박경리, 장용학, 김의정, 아동문학에 마해송, 박홍근 등 현재 문단의 원로라 할 수 있는 빼어난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톨릭 신자 문인들, 그리고 이들이 발표하는 작품들은 한국 문단에서 꾸준히 상당한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왔다. 어떤 작품들을 가톨릭 문학이라 해야 할 것인지를 분류하는 것은 때로는 매우 애매하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가톨릭 문학」이라기보다「가톨릭 신자 문학인」이 한국 문단 안에서 얼마나 되는지를 본다면 미흡하나마 한국 가톨릭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미루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 문인들의 모임인「가톨릭 문우회」는 서울에만 그 회원이 2백50여 명을 넘어섰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신자 문인들이 있고 부산, 대전 등 지방의 문우회도 할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가톨릭 문우회는 96년 2월경 제1회「가톨릭 문학상」시상식을 거행하면서 가톨릭 문학의 부흥을 위한 지원을 할 예정이다. 교회 내 출판사들의 경우, 주로 번역서에 의존하던 출판 경향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내 창작 작가의 발굴에 전례없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희망적 전망을 갖게 한다.
복음의 메시지는 문화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96년은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톨릭 문학의 부흥을 위한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가톨릭 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역량 있는 작가의 발굴, 지원 및 가톨릭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가톨릭 문학의 부흥을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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