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독자 여러분과 이 땅의 모든 분들께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축복이 풍성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해는 민족적으로 매우 슬프고 괴로운 한 해였다. 두 전직 대통령이 연달아 구속 수감됐다. 독재와 군사정권의 말로는 비참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로 인해 망명지에서 타계했다. 군사혁명으로 장기 집권한 대통령은 총탄에 쓰러졌다. 그 뒤를 이은 두 군인 대통령은 군사반란과 무고한 수많은 양민 학살과 내란죄 그리고 막강한 국가 권력을 배경으로 천문학적 뇌물수수로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총칼과 탱크 앞에 싹쓸이된 것 같았지만 때가 되면 응분의 응징을 하여 정도를 찾는 것이 이 민족의 정기인가 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고 법치를 확립한다니 성공을 기원하며 국민 모두가 적극 협력해야겠다.
법치 확립 성공 기원
저간의 일련의 사태들은 분수를 모르고 날뛴 무지와 힘(무력), 권력과 욕심이 야합해 만든 인간 비극이며 국가의 정신적 도덕적 물질적 큰 손실이었다. 지금의 처지에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사실 감추기에 안간힘을 쓰니 인간성의 파탄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도 옥중 단식투쟁이라니 누가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단식인가? 공소시효가 어떻고 헌재가 어떻고 말이 많았다. 군에서 하극상의 살상이 있었다면, 더 나아가 수많은 양민학살이 사실이라며, 하느님의 창조질서의 근간 인 자연법(천리와 인륜) 에 신정법을 맞추어 가야 할 것이다.
법정은 양심의 발로
우리는 여기에 이르러 대 로마 천하를 호령하던 보에시우스가 자기 철학의 신념으로 썩을 대로 썩은 로마 정치 풍토를 바로 잡으려다 무고로 인해 한 번의 변호의 기회조차도 업이 사형선고를 받고 어느 순간에도 사형이 집행될 수 있는 유배지에서 태연자약 불후의 명작「철학의 위안」을 남긴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는 인간 법정은 양심의 발로여야 하며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변호인 같은 것은 필요없다고 갈파한다. 과연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고 대 철인답다.
이제 우리는 이 땅의 종교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우리나라 종교들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번창한다. 그러나 이런 전대미문의 부정과 부패, 인명 학살 앞에서 종교들은 무력했다.
그런 인물들의 언저리와 핵심에도 많은 종교인들이 자리 잡고 있은 것으로 안다. 종교도 깊은 자성을 요구 받는다. 지난해 하반기 가톨릭교회는 냉담자 급증과 입교자 격감,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 등으로 종교매체들이 한바탕 법석이었다. 선교열 부흥이 역설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가신 것은 오직 인간 구원, 선교 때문이었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에서 공의회는「교회는 본성상 선교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후 많은 선교 관련 회칙들이 발표됐다. 선교는 이 땅의 교회의 생명 전부이다. 선교의 성쇠는 벌써 10년, 20년 전에 그런 싹이 움튼다. 해방 전 일제 말기 1930년 후반기 일경의 강압 속에서 남북한의 가톨릭 신자는 15만 내지 18만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방과 6ㆍ25전쟁은 천주교와 개신교에 획기적인 교세 신장의 계기였다.
조국 분단, 1천만의 이산가족, 6ㆍ25 동족상잔, 전 국토의 초토화 등 민족적 시련과 마음의 공허는 종교로의 끝없는 귀의현상을 일으켰다.
교회는 본성상 선교적
그 밑바탕에는 이 민족의 깊은 종교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신앙적으로 는 북한 교회의 피의 희생은 남한에서의 풍성한 결실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신자들의 마음에는 선교열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교회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으며 그것은 곧 군사독재와 인권 탄압에 항거하는 정의구현운동이었다. 또 80년대에는 1백50주년과 선교 2백 주년 행사, 세계성체대회, 교황님의 두 번의 방한 등으로 교회는 아연 활기찬 모습이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쳐 교회는 놀라운 교세의 신장을 이루었다. 많은 지성인들과 젊은이들의 입교도 뒤따랐다. 그러나 민주화의 가속화, 개인 물질생활의 풍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90년대 초반부터는 그 신장세가 둔화되더니 급기야 작년에는 교회 매체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급격한 냉담자 증가와 입교자의 격감, 청년 층의 70% 내지 80%의 교회이탈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국제적이며 민족적 대행사와 단체들의 수많은 대규모 집회들을 연속 가졌으며 도처에 큰 성당들의 건축도 병행되어 막대한 비용도 지출했다. 그러나 한편 선교열은 식어가는 형국이었다.
심각한 청년들 이탈
현재 교세가 3백만 명 이상으로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전 인구의 7.5% 정도만이 가톨릭 신자이니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20% 내지 30% 정도는 되어야 교회의 선교사명을 하였다고 하지 않을까.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근년 2천년대를 대비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제시했다. 기실 한국 교회는 벌써 선교 2백주년 사목회의 준비를 1981년 하반기에 시작하여 85년 초에 사목회의 의안집을 끝냄으로써 2천년대 준비와 소재들을 충분히 마련했다. 사목회의의 대명제는 민족 복음화이고 또 교회의 토착화와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목회의 의안 준비는 한국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교회의 모든 지역과 구성원이 골고루 참여한 하느님의 백성의 소리를 총망라 집약한 것이다. 그 방법은 백지상태에서 각 단체들이 제출한 3백여 건의 내용을 12안건으로 정리하여 전국 교회의 풀뿌리에서 의견을 몇 번이고 수합 재조정한 거이다. 또한 의안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철저하고 광범위한 사회 조사를 거쳐 마련되었다.
해이해진 선교의식
드디어 교황님의 임석하에 사목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런 사목회의는 한국 선교 사상 초유의 것이며 세계 교회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각 의안 끝에 첨부된 제안 사항들은 이 땅에서 요청되고 도래해야 할 교회의 모습이며 2천년대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의 빛나는 선조들은 바오로 사도와 같이 선교하며 순교하였고 순교하며 선교하였다. 오늘에는 이런 선교정신이 매우 해이해졌다. 신자들에게 선교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음을 깊이 인식시켜야 한다. 교계와 신자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선교열에 불 탄다면 이 땅에는 폭 넓은 선교 지평이 새롭게 전개될 것이다. 이것을 본인은 본당 사목에서 생생이 경험했다. 신자들은 누구든 막론하고 자기 가족 중에 아직 영세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입교시켜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으며 형제, 친척, 친지 등에 대해서도 같은 선교열을 발휘해야 하고 직장 동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인들은 자기 종업원이나 직원들에게 직ㆍ간접적으로 그런 열성을 보여야 한다. 평신도들은 그 삶의 터전인 세상 안에 산지사방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족 입교 위해 노력을
특히 청소년들의 사목과 선교는 화급을 다투는 교회의 과제이다. 서울대교구가 금년 사목 지표를 청소년 사목으로 설정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다. 본인은 2백주년 사목회의 중 계속 민족 복음화 즉 선교를 강조했으며 특히 청소년 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대학생과 노동자들에 대한 선교와 사목에 특별 배려를 호소하였다.
주일학교의 중요성
젊은이들은 이 두 부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학노로 연대되어 잘못 나갈 때 교회는 물론이고 국가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80년대 중반과 후반에 그대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집합장은 우선 초 중 고교와 대학들이다. 우리는 외국들과는 달리 대학은 물론이고 초 중 고등학교들조차 너무 적어 이들의 종교교육을 거의 본당의 주일학교 교육에 의존하는 형편이고 교사의 질 또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주일학교 교사들도 일반학교 교사들처럼 충분한 지식과 자질 즉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본인은 불광동본당 주임 시절 주일학교에 국민학교 현직 교사들과 교리 신학원생들을 투입하여 주일학교 교육이 활기를 띠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교회는 노동계에 지대한 관심과 각별한 선교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노동계층에 가톨릭 신자가 너무 적은 것은 선교 전선의 중대한 이상이다.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우리네 실정에서 청소년의 인성교육문제롸 선교정신 배양은 가정에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 같다.
노동계에 적극 관심을
어떤 교구에서는 1996년을 가정의 해로 정했다니 참 좋은 일로 생각한다. 진정한 크리스찬 가정, 선교열이 싹 터오는 가정들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연구의 뒷받침을 받는 사목지표 설정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여 2천년대에 요청되는 교회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사목회의 의안들은 각 분야에 필요한 연구소 설립을 요청했지만 구호에 그친 감이다. 21세기의 교회는 분명 평신도들의 적극적 참여가 요청되는 교회이다. 평신도가 명령 하달만을 실행하는 참여가 아니고 재정, 행정, 선교사목, 심지어는 인사에까지 관여하는 전반에 걸친 응분의 적극적 참여이어야 하겠다.
평신도들 참여 긴요
이웃 일본의 어떤 교구는 깊은 연구를 토대로 금년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같이 하는「공동 선교사목의 해」를 제정하였다고 한다. 작금년에 스위스의 어떤 교구에서는 교구 주교를 사제총회에서 선출하고 교황청이 승인했다고 들리며 오지리의 비엔나교구장 추기경은 주교 선출에 있어 교구 내 성직자는 물론이고 평신도도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는 외신 보도 등은 21세기 세계 교회의 향방을 가늠케 한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평신도 기성인들의 적극 참여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며 교회 언론의 활성화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도 언론도 마찬가지로 먼저 교회정신과 교리 지식에 깊이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 교계가 평신도를 본연의 자세로 양성하고 교계와 평신도가 공동사목을 해나갈 수 있는 새 차원을 열어가는 것이 이 땅의 교회의 21세기를 향한 근본 과제이다.
상호 협력은 전제조건
이런 저런 일들이 잘 준비되고 실천될 때 2천년대에 활기찬 교회상이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견이다. 교회에 관한 일은 교구장을 중심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상호 협력해야 하고 지역사목, 특수사목도 책임사제를 중심으로 교계와 평신도가 상호 협력해야 함은 교회사목의 기본적 전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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