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은 한국인 첫 사제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순교 1백50주년을 맞는 해일 뿐 아니라 김 신부의 동기 동창인 한국인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탄생 1백75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역시는 과거ㆍ현재, 미래를 잇는 다리이다.
새해는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자 신심 함양과 함께 2천년대의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터전을 닦을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교회의가 전국 단위의 기념행사 없이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 1백50주년을 각 교구별로 지내기로 결정해 아쉬움이 크지만, 때마침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최석우 신부)가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배티성지(지도=장봉훈 신부)에서 최양업 신부 시복운동의 기본 자료가 될 전기 자료집을 간행하기로 해 다소 위안이 된다.
가톨릭신문을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과 최양업 신부 탄생 1백75주년을 기념해 특별기획「피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를 마련, 금년 한 해 동안 두 신부의 총체적인 인물 조명과 함께 현양사업을 선도해 나갈 방침이다.
「피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 그 첫 회로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인물 탐구를 마련했다.
금년 3월 1일은 최양업 신부 탄생 1백75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 9월 6일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건ㆍ최양업 신부는「피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로 대변해 불릴 만큼 서로 아주 다른 신앙 증거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두 분 다 한국 성직자들뿐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로부터 신앙의 귀감으로 현양되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사목생활 1년 만에 순교했으나 최양업 신부는 12년 동안 7천리 길을 걸으며 사목활동을 하다 과로로 선종한 성직자이다.
두 신부의 생애에서 보듯 이 김대건 신부는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증거했고, 최양업 신부는 피 흘림으로 세워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순교까지 억제하며 사목활동에 전념했다.
최양업 신부는 그간 김대건 신부의 그늘에 가려 제 빛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이번 배티성지에서「최양업신부 전기 자료집」발간작업을 착수하면서 서서히 그에 대한 진면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서로 동신에 닮은 꼴이 너무나 많은 분들이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우선 동갑이다. 모두 1821년에 출생했다. 굳이 따지자면 3월 1일 충청도 청양 다락골에서 태어난 최양업 신부가 그해 8월 21일에 충청도 솔뫼에서 출생한 김대건 신부보다 형님이 된는 셈이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진외 6촌간으로 김 신부의 증조모 이 멜라니아가 이존창의 딸이고 최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가 이존창의 손녀, 즉 멜라니아의 조카딸이 된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1836년 당시 16살 때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으로 발탁됐다.
기록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의 경우 신학생에 선발된 지도 얼마 안 되고 서울에 올라와 수련한 기간이 짧아서 처음에는 최양업, 최방제 등과 함께 파견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당시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려우리라는 모방 신부의 판단에 따라 함께 간신히 마카오로 떠날 수 있었다. 만일 이때 김대건 신부가 낙오가 됐다면 한국 교회사는 최양업 신부를 중심으로 재편집됐을지도 모른다.
신학교 교수 신부들의 기록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는 건강은 약했지만 활동성이 강했던 반면 최양업 신부는 내성적이며 학구적인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843년 12월 만주 땅 소팔가자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같이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는 당시 만 24세가 안 되었기에 연령 미달로 사제품을 받지 못했고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금가항에서, 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돼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됐다.
최양업 신부는 부제품을 받고 소팔가자 교우촌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다가 자신보다 먼저 입국을 시도했던 김대건 신부를 통해 부모가 순교한 소식을 듣고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1846년 두 차례에 걸쳐 변문으로 입국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만다.
최 신부는 이후 홍콩 파리외방선교회 경리부에서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고 기해일기를 기초로「김대건 신부 순교자전」을 라틴어로 저술, 동기의 거룩한 죽음을 기렸다.
1849년 4월 15일에 한국인 두 번째 사제로 서품된 최양업 신부는 그해 12월 변문을 통해 7년 6개월간의 노력 끝에 조선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최양업 신부는「길의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입국 후 서울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선종하기까지 거의 12년 간을 전국 5도에 걸쳐 전교활동을 했는데 당시 1만5천여 명을 헤아리던 교우 중 약 4천여 명이 성사를 받았고 그가 걸은 길만 해도 7천여 리가 된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는 25편의 서한을 남겼는데 한문본 1편, 한글본 1편, 나머지는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다. 또 김 신부는 일종의 행정지도인「조선전도」를 남겼다.
최양업 신부는 19통의 라틴어 서한을 남겼는데 현재 한 통이 유실되고 18통만 전해지고 있으며「성교요리문답」과「천주성교공과」를 전술했다. 또「사향가」「사심판가」「공심판가」등의 천주가사를 지어 평신도의 교리 지식 습득에 도움을 주었다.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사상과 영성적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보여준다. 김대건 신부의 사상과 영성의 핵심은「하느님께 대한 효애」이다.
김 신부는 자신의 서한에서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 피 흘리는 것은 영광으로 생각한다. 또 고통이란 교회 성장의 불가분 요소로서 죽음을 통해 복음의 승리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의 사상과 영성은「굳건한 신심, 드문 덕행, 구령을 위한 불 같은 열심」으로 요약된다. 최 신부의 덕행 중 가장 뛰어난 것은「겸손의 덕」으로「자신을 완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길 것」을 가르친다.
최양업 신부는 특히 7년여에 걸친 입국 시도에서 드러나듯이 순명을 위해 순교까지도 억제하여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리는 것과 인간의 존엄성을 중히 여겼던 삶도 그의 영성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인터뷰]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신부
“교회사는 현실화돼야” “최고의 사랑ㆍ봉사가 현 시대에 맞는 순교”
『교회사는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신부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과 최양업 신부 탄생 1백75주년을 맞는 1996년이 한국 천주교회사를 바로 잡는 원년이 돼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역사의 진리는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교회에 더욱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최석우 신부는『한국 교회의 전통인 순교사를 계승하기 위해선 순교적 의미를 오늘날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현실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순교를 최고의 사랑과 봉사로 보는 것이 오늘날 순교에 대한 현대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최석우 신부는『교회가 권위를 벗고 봉사와 사랑의 방법을 찾아나설 때 퇴락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순교 전통과 순교자 신심 및 현양운동이 다시 부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순교사에서 만일 103위 성인 중 김대건 신부가 빠졌다고 가정한다면, 그래서 한국 순교 성인이 모두 평신도와 외국인 성직자들뿐이라고 한다면 한국 교회의 자부심은 물론 한국인 성직자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어떻게 됐을까 하고 최석우 신부는 반문한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김대건 신부의 순교가 차지하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한 최석우 신부는『김대건 신부가 고별문에서「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줄 것이니 서러워 말라」고 한 말씀을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진실히 묵상하고 한국 교회가 이토록 성장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겸허히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백40주년 전국현양대회 안건이 주교회의에서 부결된 것에 유감을 표한 최석우 신부는『과거없이 현재가 이해될 수 없듯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김 신부의 순교 1백50주년 전국 행사를 치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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