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영세한 지 20년째 되는 박무일씨 (가명ㆍ50),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와 아내가 있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러나 박씨에겐 지나온 20년 가까운 세월이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과 인내의 나날들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신자로서 살아온 시간 대부분을 냉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지만』.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랑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넋두리만 늘어 놓는게 아닌지 의문과 자괴감이 앞선다며 말문을 연 박씨의 경우는 사실 흔치는 않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그래서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경우였다.
개신교 신자였던 박씨는 결혼을 앞두고 개종, 통신교리를 배우고 영세한 후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특별한 조건을 따질 것도 없이 열심한 신자라면 좋겠다고 선택한 상대였다.
그러나 신혼을 맛볼 겨를도 없이 박씨에겐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성당일에만 매달리느라 가정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처음엔 저러다 말려니 했지만 갈수록 심해졌고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내는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성당일에 몰두했다.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고 집에서도 성당에 관계된 일을 놓치 않았다.
퇴근해 와서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는 자신은 괜찮다 하더라도 커가면서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할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아내가 하는 일은 본당, 교구 일까지 해서 열가지가 넘었습니다』. 대화로 마음을 돌려 보려 했으나 매번 다툼으로 끝날 뿐이었다.
『한번은 말다툼 끝에 과로했던 탓인지 제가 갑자기 코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고는 누웠는데 아내는 또 성당에 가더군요.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정의 일이라 생각하니 선뜻 누구에게 상담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아내의 이름을 알만한 사람은 아는 처지이니 쉽게 말을 끄집어 낼 입장도 못 되었다. 갈등과 괴로움 속에서 직장생활 역시 편할리 없었고 성당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었다.
박씨의 신앙생활은 결혼 후 불과 몇 년을 못 넘기고 결국 냉담에 빠지고 말았다. 그 기간은 10년을 넘게 계속됐다. 천직으로 알고 몸담았던 공직에서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자신의 본심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갈등에 시달려온 박씨는 어렵게 냉담에서 깨어날 기회를 찾았다. 부족한 교리지시 탓이라 여긴 그는 꾸르실료를 다녀오고 성령 세미나도 받았다. 평신도 신학강좌도 들으며 신앙의 살을 찌우고 어떻게든 이 현실을 극복하려 애썼다.
그러나 인간적인 한계는 또 한번 그를 냉담에 빠트렸다. 지난 94년 가을 무렵부터였다. 『그땐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그전의 냉담때와는 저 자신도 변한걸 느꼈습니다. 아내의 얼굴도 보기 싫었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궁리만 했습니다』.
「이혼」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박씨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집스럽고 소심한 성격 탓에 건강까지 악화된 아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가 성당 일에 매달리는 속사정을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연금과 지금의 벌이로도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편이고, 아이들도 그 와중에서도 곱게 자라주고 있습니다. 활동하면서 상대적인 빈곤을 느끼는지 가끔씩 불만을 얘기하긴 합니다만…』.
박씨는 교회의 상담전화를 이용했다가 실망만 느낀 적도 있다.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갖고 상담을 청했는데도 너무나 무성의한, 전문성이 결여된 대답만 하더라는 것이다.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서 얘길 꺼낸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수천 명의 신자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부담만 지우는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도 찾아가서 상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상담기관이 절실 하다고 봅니다. 꼭 냉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전문 지식을 갖고 신앙생활 상담이 가능한 장치 말입니다』.
박씨는 지난 성탄절에 고해성사를 받고 냉담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난 14개월의 냉담경험이 쓰라린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한 상황에서 신앙을 등졌다는 것이 더욱 후회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또『한 번 냉담한 사람은 그 마음이 무디어져 다른 사람보다 더욱 불성실한 삶에로 추락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