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
하지만 그것은「감춰져 있는 것」혹은「비밀」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행하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생명력의 증진과 회복은「신비」를 접한 사람만이 얻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신비에의 입문」이 선행되어야 했다. 결국 신비의식의 특징은 일차적으로 입문식인 셈이다. 이 입문식을 거친 사람은 성별된 사람이기에 이후의 신비의식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미 신비를 알고 있는 선배 신비가들과 우정을 나누고 동시에 그들 가운데 있는「거룩한 사제」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비를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온갖 고통은 물론이고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완전한 생명을 보장받는 공동체의 삶의 특권으로 부여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입문한 사람은 의식수행의 특수성이나 그 내용에 대해 엄격한 비밀을 지켜야 했다. 이것이 신비의식이 갖는 이차적인 특징이었다. 만일 입문한 이들 가운데 누구든지 이 비밀보장의 의무를 파기하는 경우(아르카눔의 누설) 그는 신성모독으로 처벌된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비의식에 관한 정보가 그다지 많이 입수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나마 이 정도만이라도 알 수 있게 된 것은 고대 헬라스의 호메루스가 남긴「데메떼르의 송가」에 남겨진 기록 덕분이다.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깊은 탐구를 서슴치 않았던 고대 헬라스 철학자들로 하여금 신비가로서의 입문과정을 생각하게 만든 것이 바로 신비의식이 아니었던가 추정한다. 이러한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자료가 곧 플라톤의「심포지온」이다. 그 자료는 순수한 존재자를 추구하는 철학자를 그 존재에 대한 환시를 체험할 수 있게 인도해주는 여성적 성격을 지닌「디오티마」라는 한 사제를 소개하고 있다(심포지온 210~212).
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이고 변화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불가시적이고 불변의 실체에로의 상승은 오로지 신비의식, 신비에의 입문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자료는 신비의식을 목적으로 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의 궁극적 진리에의 도달을 목적으로 해서 소개한다. 플라톤의 또 다른 작품들 안에서 그 점을 확증할 수 있다. 어떻든 플라톤은 가시적인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어두움 속에 가리워져 있는 불가시적인 유일자, 선, 그리고 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인데 그 지혜만이 이 세상과 자연이라는 객체들을 상징적으로 통합시키는 기능을 발휘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세계관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진정한 실체, 신적 실체, 천상적 실체의 상징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철학 영역에서의「신비」는 결코 신비의식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진리를 전달해주는 지혜에 관한 비밀교수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②성서 헬라어
헬라어를 쓰던 지역에서 사용되던「뮈스테리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서들 즉 지혜서, 다니엘서, 토비트기, 집회서, 마카베오 하권에서 의식과 철학의 두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그 의미가 깊은 지혜서와 다니엘서의 구절들만 보겠다.
지혜서 2장22절의 내용은 이렇다. 『그들은 하느님의 오묘한 뜻(신비들)을 모르며』이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한 분 하느님 야훼를 주체로 하고 있는데 그 분이 악인들에게는 감춰지신 분이기에 악인들로서는 그분 뜻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본문에서 지적하는 악인들은 누구일까? 그 답은 14장 15절과 23절이 밝혀 주듯이 이방의 방식대로 신비의식 혹은 비밀의식을 거행하는 자들이 그들이다(12장 5절 참조). 그러나 하느님의 오묘한 뜻(신비들)이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알려지게 되는데 그것은 지혜의 중재적 기능 덕분이다(8장). 아울러 그 지혜의 중재적 기능 덕으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불멸의 구원을 얻어 누리게 된다(6장~9장). 결국 지혜서에서의「신비」는 두 가지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이들에 대해 말할 때는 철학 차원에서의 것인데 비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방의 방식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이들에 대해 말할 때는 의식차원에서의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서신학적인 면에서 볼 때 지혜서의「신비」용어는 플라톤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니엘서, 즉 하느님의 비밀의 계시서(2, 18~19 27~28 : 47, 4.6)에서 소개되고 있는 비밀들은 시간의 흐름 곧 종말을 향해 계속 이어지는 역사 안에서 이루어질 비밀, 구원 계획의 신비에 관한 것이다. 이 비밀들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어서 틀림없이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것을 꿈이나 환시를 통해서 혹은 천사를 시켜서 그리고 엑스타시스의 순간에 계시할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그 어떠한 것이든 이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 오직 하느님만이 비밀을 아시고 알려 주신다(2, 28과 47 참조). 그런데 그 비밀을 알아듣게 되는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소수의 특은을 입은 이들로서(5, 11 참조) 하느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영 덕분에 어떤 신비도 풀지 못하여 당황하는 일이 없게 될 사람들이다(4, 6). 결국 이러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다니엘서의「신비」는 종말론적인 전망에서 신비의식 내지 영지주의적인 쓰임새에 상당히 근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상 구약성서의 이러한 묵시문학적이고도 종말론적인 요소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신약성서 헬라어「신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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