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에 의하여 한반도가 분단된 지 반세기 이상이 경과했건만, 아직도 남북한 간의 조속한 재통일 가능성은 불투명하며, 화해ㆍ협력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도 미흡한 초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한 모두가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통일을 지상과업으로 내세워 왔으며 남북한 관계를 규정짓던 동서 간의 냉전마저 종식되었으나, 현재 남북한은 통일을 위한 화해ㆍ협력 증진은커녕 대화마저 중단한 채 상대방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여 상호 비방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정책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북한이 어떠한 나라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을 강하게 지닌 사회주의 국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둘째, 북한은 당에 의하여 영도되는 당-국가(Party-State)이다. 셋째, 북한은 초헌법적으로 절대적 존재인 수령에 의하여 지배되는 수령국가이다. 넷째, 북한은 자주성 또는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다섯째, 북한은 정치적 위험부담 때문에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개혁과 개방정책을 실시할 수 없는 「보수적」이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폐쇄된 국가이다.
특히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은 북한사회 뿐만 아니라 남한과 미국 및 일본 등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북한의 변화에 관한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었다.
크게 아쉬웠던 점은 남북한 간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조문파동 등으로 인해 남북한 관계가 경색된 것이었다. 대조적으로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에서 동년 10월 21일 핵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김정일 외교의 유연성과 협상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남북한이 김일성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기회와 도전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말았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러운 점이다. 아마도 남한 측의 미숙함도 원인으로 지적되겠지만 근본적으로 지주를 잃은 북한 지도층이 남한의 대북 침투와 흡수통일을 경계하고 내부결속을 위해서도 「악한」역을 맡을 남한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가장 높은 목표는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조국을 재통일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북한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남한을 공산화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아직껏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1950~1953년 한국전 기간 무력사용을 통해 한반도 통일과업을 거의 달성할 뻔 했으나,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의 개입으로 그 시도는 민족상잔의 엄청난 비극만을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휴전 직후 제네바에서는 교전국들이 협상을 통해 통일된 한국정부를 세우고자 회담에 임했으나, 심화되는 냉전의 와중에서 협상은 애초부터 타결을 기대할 수 없는 선전과 장치의 장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휴전 후 양측은 민족의 지상과업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보다 전후 복구사업과 경제발전에 주관심을 쏟았다. 미군의 남한 주둔과 북한과 중ㆍ소와의 동맹관계는 냉전기간 한반도에서의 심각한 분쟁발생을 억제했으며, 실현성이 희박한 통일제의는 정치적 선전이나 제안경쟁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의 상처와 휴전 이후 무수히 발생한 무력도발 및 충돌사태들은 세월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관계를 계속 냉각시켜 왔다.
1960년대 후반기 한반도에서의 긴장된 군사적 대치상태와 1983년의 랭군 폭파사태 및 1987년의 KAL기 폭파사건 등은 쌍방이 내놓은 통일제안들과는 관계없이 발생했다.
그러나, 1989년의 동구사태를 분수령으로 국제질서가 크게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동구제국과 구소련의 붕괴는 북한의 안보환경 악화를 의미하며, 북한은 생존을 위해 외교 안보정책을 전면수정 또는 조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북한은 1980년 10월 「고려 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내놓으면서 연방제 통일을 위한 선결조건과 10대 시정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1990년 10월 독일이 통일되고 1991년 12월 구소련이 해체되는 충격적 사태들이 발생하자, 사회주의체제 수호와 정권유지를 위한 수세적 태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1992. 1. 3)이라는 담화를 통해 『사회주의는 전인미답의 길로서 시련과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패는 역사발전의 흐름에서 볼 때 일시적 현상이다』라고 강변했지만, 북한지도층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북한은 1954년 제네바에서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안했으나, 1960년 과도기적 연방제를 제의했고, 1980년대에는 완성형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변화시킨 구체적인 통일안을 제시했다.
1989년 동구사태가 발생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북한은 남북한관계가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서독식의 흡수통일 가능성을 크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북한이 강조하는 연방제 통일안은 두 개의 주권국가 간의 「국가연합」형태의 통일안으로서, 1980년의 「고려 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에서 크게 후퇴한 통일방안이라고 평할 수 있다. 국내외 정세가 북한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는 한, 통일과 관련된 북한의 수세적 입장은 일정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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