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신앙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그는 바빌로니아 남부 우르(Ur)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 하느님은 그에게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치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창세기 12, 1~3).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부모와 고향을 버리고 미련없이 떠났다 (창세기 12, 4).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왜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떠났다(히브리 11, 8). 그는 자신의 재산, 부유함, 안정을 버리고 고향, 부모, 친척들을 떠나 어디론가 하느님의 말씀에만 의지하면서 정처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가라! 떠나라!』. 이 말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이탈을 요구한다. 즉 마음으로부터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 부터 떠나야만 하느님께 오로지 의탁,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이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 의탁, 신뢰하는 마음이 없이는 신앙이란 불가능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 믿음, 곧 신앙은 자기 이탈과 자기 포기를 요구한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을 모험에 투신하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에게 이 믿음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도 틀림없이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을, 한 아들을, 수 많은 후손을, 바다의 모래알처럼 수 많은 백성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로 이런 것들을 그에게 주시길 망설이셨고 또한 서서히 이루어 가셨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만 했다. 하느님은 그를 당신의 선택한 민족을 이루기까지 아브라함을 오랫동안 불확실함과 시험속에 두셨다.
이제 특별한 언약의 아들, 아브라함의 씨가 큰 민족이 되고 모든 이가 그로 인해 복을 받으리라던 하느님의 약속을 어떻게 알아 들어야만 할까? 틀림없이 그의 믿음은 시련으로 말미암아 죽도록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어느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그것도 하느님의 특별한 언약 아래 주어진 외아들을 갈등없이 바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말없는 가운데서 하느님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이 그에게 열어 주시는 깊은 밤으로 들어갔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련을 당했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았던 그는 외아들을 바쳤습니다. 사실 「이사악의 대를 이어야 너의 후손이라 불리리라」고 그를 향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히브리 11, 17).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순간 자신의 미래까지 모두 하느님께 바친 것이다. 아브라함은 『희망할 수 없는데도 희망하면서 「네 후손이 저 만큼 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다. 그는 하느님의 언약에 대해 불신으로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앙이 굳세어져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그분께서 언약하신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굳게 믿었다』(로마 4, 18~22).
우리는 여기서 모든 이성과 논증을 뛰어 넘는 믿음에 대해서, 오직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는 이에게만 줄 수 있는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 「비이성적」이면서도 강하고 견고한 확신을 가진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같은 믿음은 인간적인 계산과 숙고를 넘어서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신앙은 소유하기를 바랄 수 있고 또 노력할 수 있지만 만들 수는 없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달라고 청하지도 않은 아들을 주고서는 이제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여 당신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이신가? 이 얼마나 끔찍스런 요구이며 모순인가! ? 이재 아브라함의 희망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는 어둠속에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었고 하느님께 순종하였다. 이 얼마나 큰 믿음인가!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치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기에』(창세기 22, 15~16)하느님은 그를 축복하셨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 순종하는 자』로 인정받았고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극복된 모든 어려움은 축복이 될 약속을 받는다. 하느님과의 우정안에서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더욱 더 큰 신앙이 필요하다.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은 신실하고 돈독한 신앙이 더욱 요구되며 필요로 한다. 바로 예언자들, 제자들과 많은 성인들의 삶이 이를 증명해 준다. 신앙은 불투명한 가운데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고 신뢰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자신을 남김없이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맡길 때 자시 자신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염려하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안에 머물고 만다.
아브라함에게 소중한 것은 그의 외아들 이사악이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곧 이사악은 무엇인가? 만약에 하느님이 내게서 그 소중한 「이사악」을 요구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우리는 흔히 「내 이사악」을 주변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내 이사악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또는 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바친다 한들 그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돈이나, 권력, 재물이나 명예, 이 모든 것들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기이탈과 자기포기가 없이 이 모든 것들을 내어 놓는다 한들 그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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