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신분질서 사회였던 조선시대 후기에 전래된 천주교는 어떻게 자신의 평등사상을 설파해 나갔을까. 또 이러한 천주교의 반사회적 평등사상은 당시 사회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아울러 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을까.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 복자수녀회)의 글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와 천주교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시대의 신분 구성은 양반, 중서(中庶), 상인(常人), 천인(賤人)으로 되어 있으며 천인의 구성은 노비(奴婢), 광대(廣大), 사당(社堂), 무격(巫覡ㆍ무당), 백정(白丁)등이 포함되어 있다.

노비는 국가기관에 소속된 관노비와 사노비가 있었다. 사당(社堂)은 사당패라고도 하였으며 모갑(某甲ㆍ통솔자)밑에 조직을 이루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며 광장이나 절 근처에서 가무를 하며 흥을 돋구었다. 백정들은 특수계층의 천민으로 일반사람들이 거주하는 부락에 거주하지 못하고 외딴 곳에 따로 모여 살며 도살이나 유기를 엮어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들의 집단이 우범지대로 취급되었다. 백정은 의복에 있어서도 뒤에 짙은 회색을 대어 입었으며 부인은 검은 치마에 흰줄을 하나 넣어 백정의 표시를 하게 하였다.

조선은 엄격한 계급사회였으므로 신분에 따라 가옥에서부터 머리장식, 장신구, 옷, 신, 분묘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차이를 두었다. 상민부녀들은 생초, 모의(毛衣)를 입지 못하였으며 천민부녀들은 생초, 모의(毛衣), 항라(亢羅), 능단(綾段)을 입지 못하고 금, 주옥 반지를 끼지 못하였다. 또 상민과 천민은 굽달린 나막신과 비단신을 신지 못하였다. 상민 천민은 분묘에 있었어도 석인(石人)과 망주석(望柱石)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표석은 2척을 넘으면 안되었다. 노비는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하였으며 특히 계급사회에서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정조를 유린당하였다. 관비가 낳은 자녀 가운데 모(母)만 알고 부(父)를 알 수 없는 금수와 같은 생활을 강요 당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권이 유린당한다 해도 법에 호소조차 할 수 없었다. 남원의 퇴기(退妓) 월매(月梅) 의 딸 춘향(春香)이 탐관오리 변학도(卞學道)가 수청을 강요하자 춘향은 죽기를 한하고 거절하자 변학도가 『너같은 창기배에서 절개가 웬말이냐』고 하자 춘향은 『충효 열녀에 상하있오』하고 응수한다. 이 말은 모든 이로부터 갈채를 받고 있다.

형법에 있어서도 법이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았으며 신분에 따라 처벌법이 달랐다. 양반부녀가 범죄하면 간음죄와 사죄(死罪)이외는 대개 가장에게 책임지워 보호감독하게 되어 있는데 여비(女婢)는 사소한 범법행위라도 직접 체형을 가했다. 사대부들이 집안에 형구(刑具)를 만들어 놓고 노비에게 함부로 벌을 가했으므로 세종때 사형(死刑)을 금지시켰으나 이런 폐습은 근절되지 않았다.

타인을 구타한 사람을 처벌하는데 있어서도 피해자의 신분에 따라 형벌이 가감되었다. 노비가 양민(良民)을 구타한 경우에는 일반구타죄에 1등을 가중하여 처벌하였으며 노비가 상전을 구타한 경우에는 참수형(斬首刑)을 과하고 반대로 양반이 노비를 구타하면 중상해(重傷害)가 아니면 불문에 붙이고 중상해이면 3등을 감경하게 법으로 되어있으나 사실은 대부분 불문에 붙였다.

노비가 상전을 살해하면 극한적인 중형을 내려 일벌백계(一罰百戒)를 꾀하였으나 노비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상전을 살해까지 하였던 것이다.

노비가 상전을 살해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첫째 심한 노역과 학대이고 둘째는 노(奴)의 아내를 상전이 농락했을 경우 상전을 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노비가 상전을 살해하면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수형에 처하고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읍호를 강등시켰다.

인조때 여비 낙금(洛今)이란 여인은 아들 몽이(夢伊)가 매일 주인에게 몽둥이로 구타당하므로 참다 못하여 산속에서 인골을 구해다가 아들 몽이에게 주며 인골을 부수어 상전이 잠자는 방의 문과 벽에 뿌리면 상전이 죽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몽이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하였는데 얼마후에 상전이 사망하였다. 이 사실을 캐내어 몽이와 그 어머니 낙금을 사형시키고 읍호(邑號)를 강등시켰다.

조선시대에는 불능범(不能犯)인 저주범(詛呪犯)까지 사형죄를 적용하여 처벌하였다. 상전으로부터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한다해도 모반 대역죄 외는 상전을 고발할 수 없었으며 상전을 고발하면 상전을 고발한 죄로 교수형을 받게 되므로 상전을 살해하게까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