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
가장 특징적인 경우를 마르꼬 4장11절에서 읽을 수 있다. 그곳에서는 신비를 예수님의 종말론적 선포로서 중심개념인 「왕국(바실레이아)」과 결합시키고 있다. 본문을 소개하겠다. 『여러분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셨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은)비유로 들립니다』. 이 본문을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주석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의 통치를 하나의 종말론적인 의미로, 즉 하느님에게서 느닷없이 오고 또 은총을 가져다주는 실체로서 오로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는 그러한 것으로 알고 계시는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사도 바울로가 알아듣고 표현하는 신비는 다르다. 그는 은총의 실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동일시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 그 자체를 신비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로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분 안에서 드러난 명백하기 이를 데 없는 지혜의 모순이라는 점 이외의 다른 지혜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선포하지도 않았다. 바로 그분 안에서만이 하느님의 신비가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 고린 2, 1 이하 골로 2, 2 참조). 이 지혜는 유대인이 추구하던 지혜 내지 헬레니즘 사상에 의해 철학자들이 추구하던 지혜를 염두에 둔다면 도대체 역설적인 것이자 도전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로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야말로 진정한 지혜요 모든 시대에 앞서 우리 인간의 영광을 위해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지혜이자(1 고린 2, 7)신비로 본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로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내용이 있다. 그 지혜, 그 신비는 성령에 의해서 밝혀진다는 사실(1 고린 2, 10~15)과 그에 대한 선포는 일꾼인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1 고린 4, 1 에페 3, 2 이하 골로 1, 25 이하)이 그것이다.
바울로의 신비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전환점이었다. 신비의식 혹은 비밀의식 영역이나 헬레니즘의 철학 영역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던「선택된 이들」, 「개인적인 구원의 추구」라는 경향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아르카눔」은 없다. 신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공적인 것이다. 그것은 신앙고백의 내용이 되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고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신비는 바야흐로「신앙의 신비」(1 디모 3, 9)일 따름이다. 요컨대 사도 바울로는 종말론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교회영역 안에서 신앙으로 이해하고 증거해야 할 것, 즉 그리스도 중심적인 하느님의 계획과 그 성취를 신비하고 알아듣고 설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구약이든 신약이든 헬라어를 사용하는 성서는 이방의 의식이나 철학적인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나 그 용어를 빌려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미를 달리 알아들으면서 그 표현을 같이하는 같은 용어를 썼던 것이다. 특히 신약성서의 헬라어는 후대에 신앙을 통해서, 신앙의 힘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하느님 사건과 함께 후에「성사」라고 일컫게 될 의식들 일반을 실천적으로 살면서 행하던 것들의 총칭으로 뮈스테리온 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바울로의 서간들이 대표적이다. 예로써 세례, 안수를 비롯해서 방언, 예언 등 카리스마적인 것들까지를 칭할 때 뮈스테리온 이라 했던 것이다. 결국 바울로에게 대표적으로 볼 수 있듯이 성서 헬라어인 뮈스테리온은 신앙의 내용과 신앙의 행위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용어였다.
③ 뮈스테리온의 라틴어 역
헬라어를 모르고 라틴어만을 알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헬라어로 쓰여진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때쯤 신약성서 언어인 헬라어의 첫 번째 번역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 정확한 정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어떻든 오늘날 아프리카본이라고 하는 성서와「이딸라(Itala)」라고 칭해지는 유럽본 성서 안에서 뮈스테리온의 번역어인「사끄라멘뚬」이 처음 등장한다. 바로 이 번역어를 로마의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알고 사용하던「사끄라멘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떼르뚤리아누스가 로마문화권 안에서의 그리스도 용어로 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라틴어역 신약성서 안에서 뮈스테리온의 번역어가 두 가지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사끄라멘뚬 이외에「미스떼리움(mysterium)」이 또 있다. 왜 두 가지 말로 번역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떤 때는「사끄라멘뚬」으로 또 어떤 때는「미스떼리움」으로 번역했던 것이다.
떼르뚤리아누스의 영향은 컸다. 라틴어를 애호하던 신학자들은 라틴어「미스떼리움」이야말로 헬라어「미스테리온」을 적절히 옮긴 말로 알아들었기에 실제로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에 의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건, 그러나 비신앙인에게는 여전히 비밀인 채로 있는 그 사건을 일컬을 때「미스떼리움」즉「신앙의 신비」라 했고 그 신비를 표현하는 행위들 곧 그리스도교 의식과 예절들을 일컬어「사끄라멘뚬」이라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사끄라멘뚬」혹은 성사를「미스떼리움」의 표상 즉 신비를 가시화시키고 감각하게 하는 표현방식으로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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