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일정책이 한반도 분단극복과 관련된 정책이라면 그 형성에 있어서는 당연히 분단의 기원과 성격, 그리고 그러한 분단에 의해서 영향받은 정책주체 즉 대한민국의 국가목표나 성격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분단의 원인에 관해서는 외인론과 내인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반도 분단이 일차적으로 밖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나타났듯이 한반도 분단은 동서냉전 체제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냉전격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의 냉전적 제약과 양상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심각했고 엄격했으며 남북한의 대립과 갈등은 「제로섬 게임」의 전형적 양상으로 지속되어 왔다.
여기에서 통일의 문제는 남북한 체제 각기 모두에게 사활의 문제로 인식되고 그 문제와 관련된 정책 또한 강한 이념적 색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공산화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남한 단독 정부 수립, 한국전쟁 경험, 그리고 그 뒤에 잇따른 가열된 남북한 체제 경쟁을 통해서 한국의 통일정책은 자연히 반공주의적이고도 체제 방어적 동기를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 제1공화국 당시의 북진통일론과 승공통일론, 제2 제3 공화국의 「선건설 후통일」전략이 바로 그런 동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고개를 든 세계적 데땅뜨 무드의 영향과 한국 경제력의 고속성장에 힘입어 한국정부는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통일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의 적극적 대화모색, 이념적 동기와 명분론적 색채를 벗어나 보다 현실주의적 정책지향을 보인 73년의 민족화합 민주 통일 방안, 89년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그리고 현 정부의 3단계 3기조 통일방안 등에서 그러한 정책기조는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소련, 동구의 탈 공산화 독일통일이라는 극적 사태 진전으로 한국의 통일정책이 90년대에 들어 독일모델의 수용을 통해 한층 더 현실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에 강한 집착을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통일을 흔히 강조되듯이 민족적 당위요 지상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위적 목표로서의 통일만을 강조하는 통일이 곧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은 현실적 과정의 점진적 축적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결과적 산물이지, 당장 일괄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선결과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분단 상태에서도 실현가능한 교류협력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것이 민족적 통일실현에 이르는 민족공동체 회복의 길이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정치 우선적 일괄 통일방식의 비현실성과 위험성을 주목하면서 한국 통일정책에는 통일과정의 기능주의적 단계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곧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남북한 간의 교류, 협력을 통하여 민족공동체를 회복 발전시켜 단계적으로 궁극적 통일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화해 협력 단계-남북연합단계-통일국가 완성단계로 이행하는 단계설정 또한 그러한 접근방법에 따른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안의 일각에서 통일을 자기 목적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고 다분히 감상적으로 통일을 받아들인 나머지 정당화 할 수 있는 지선, 지고의 가치요 목표처럼 통일을 강조하는 예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은 민족구성원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신념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의 통일정책에서 통일의 미래상을 선명하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의지의 표현이다. 80년대 말 이후의 소련 동구사태를 계기로 민주화가 하나의 세계적 혁명으로 등장했고 인간의 자유가 보편적 가치로 정착되면서 한국 통일정책의 그러한 가치 지향은 더욱 뚜렷해 졌고 더욱 큰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통일 지상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한국 통일정책상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역점의 배분, 균형이 통일지향성의 미흡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통일을 자기 목적적인 것으로 지나치게 미화할 수 없다면 평화의 가치는 통일의 그것에 종속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우선적 역점을 둘만한 것이다.
통일은 평화를 통한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의 불안한 성취가 비참한 살육의 전쟁과, 평화의 파괴를 불러온다면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 된다. 한국의 평화통일 개념이 북한의 그것과 엄격히 구별되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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