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이 자기 집에 부리는 여비를 농락하는 것이 예사였으며 심지어는 남편이 있는 여비까지 농락하는 일도 있었다. 십대 이십대의 꽃다운 처녀가 오십세 넘어 백발이 성성한 상전으로부터 정조를 유린당해도 계급사회였으므로 어디에 호소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양반과 여비 사이의 소생들은 아무리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다 해도 과거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으며 친부(親父), 형에게도 호부(呼父) 호형(呼兄)을 못하였다. 홍길동전에 홍정승과 시비(侍婢) 춘섬(春纖)사이에서 태어난 홍길동은 인물 재능 학식이 뛰어났으나 종의 소생이란 그 신분 때문에 천대와 멸시가 심하여 집을 뛰쳐나와 의적(義賊)의 괴수가 되어 양반계급에 복수하는 내용인데 이것이 좋은 예 중의 하나이다.
서얼들은 관직으로 진출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막일을 할 처지도 못 되므로 서얼 중에는 문제아가 많았다. 정승을 지낸 박순(朴淳)의 서자 반영(反英)과 이제신(李濟臣)의 서자 경준(耕俊)등은 도당을 만들어 살인 강도까지 저질러 당시 사회의 물의를 많이 일으켰으며 홍길동전도 이런 사회적 배경속에서 나온 것이다.
양반 부녀들이 남편이 가까이 한 여비를 질투로 갖은 학대와 심지어는 죽이는 일까지 자행했으며 이러한 일은 계급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중종 때 서강변(西江邊)에 젊은 여인 하나가 온 몸이 불에 지진 자국과 멍투성이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겨우 목숨이 붙어있어 말하기를 『주인이 낙형을 한 소치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양반 부녀가 여비를 불로 지지고 구타하여 다 죽게되자 종을 시켜 내다버리게 하였는데 종들이 주인을 직접 고발할 수 없으므로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길가에 일부러 갖다 버렸던 것이다.
계급사회이므로 인신매매도 많았고 어린이 유괴도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직업에도 귀천을 두어 양반은 굶어 죽어도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었고 예술인과 기능공을 천시하여 사회나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교우들은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노비들과 함께 기도를 봉헌하였다. 당시 위정자들의 눈에는 이런 고귀한 자유평등 사상이 윤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비쳤다. 기해교난 때 조인영(趙寅永)이 지은 척사윤흠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심사유곡 사이에 모여서 핏줄이 마른 첩의 자식과 뜻을 잃은 무리와 어리석은 하류들과 서로 교우라고 일컫고 각각 사호(邪號: 본명)을 붙여서 머리와 꼬리를 숨겨 한 패가 될 것이라』
신분이 낮은 교우들은 양반과 함께 기도하고 인간 대접을 받으므로 황홀했던 것이다. 백정 황일광(알렉시오)은 자기에게는 두 개의 천당이 있는데 하나는 이 세상에서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의 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 하였다.
양반 교우들은 계급사회에서 신분이 격하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순교하였다. 하여 남종삼(요한)의 부인 이씨와 두 딸이 창녕현(昌寧懸)의 여비가 되었으며 황사영(알렉산델)의 부인 정(丁)씨가 제주도에 여비로 신분이 격하되었다. 중국에서도 교우들을 노비로 신분을 격하시키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이마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 유배보내기도 하였다.
천주교에서 만민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평등하며 귀중하다는 자유평등 사상은 사회의 복음이 되었으며 동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박해시대엔 성당도 없고 사제도 몇 분 없었으나 천주교는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던 것이다. 중국 학자 중에는 선교사들이 귀족과 천민 사이를 왕래하며 평등사상을 넣어주었으며 평등사상은 공산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청나라 때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천하의 모든 남녀는 전부 황상제(皇上帝)의 자녀이며 그 때문에 형제자매이다』라고 평등주의를 외쳐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천주교의 평등사상은 동양 계급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의 복음이었다. 혈연을 중시하는 동양 유교계급 사회에 천주교가 전래됨으로써 박애정신이 보급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현대화 민주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중국 명ㆍ청 시대 천주교를 배척하는데 큰 영향력이 있었던 서적은 황정(黃貞)의 불인불언(不忍不言), 파사집(破邪集), 임계륙(林啓陸)의 주이논략(誅夷論略), 이생광(李生光)의 유교정(儒敎正)등인데 내용이 천주교가 유교적인 윤리를 파괴한다는 것을 골간(骨幹)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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