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유사이래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가난의 질곡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매 5초마다 2명 꼴로 귀한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하루 3만4천여 명, 1년이면 무려 1천2백여만 명이 죽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빈곤의 요인은 다양하다. 과밀한 인구와 저개발, 척박한 자연조건으로 인한 만성적 빈곤, 지진이나 홍수, 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인한 환경적 빈곤이 있고 전쟁이나 인종분규 등으로 야기되는 정치적 빈곤은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난민을 양산하는 등 또 다른 비극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한 번 그 나락에 빠져들게 되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 비극은 인간의 이기심과 서로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사랑의 결핍에서 기인한다. 결국 사랑의 회복만이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보인다.
1월 마지막 주일은 교회가 정한 사회복지주일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92년 가을 주교총회에서 해외원조 사업에 나설 것을 공식 천명한 바 있다. 제6회 사회복지주일을 맞아 전 세계의 기아실태와 이를 극복해내려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노력을 살펴본다.
참혹한 굶주림
낡고 찢겨진 천조각으로 이어붙인 수만채의 움막들이 넓은 광야와 언덕을 뒤덮고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깡마른 사람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신음하고 있다.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길거리, 누더기를 걸치고 때에 절은 손을 내미는 구걸 행령, 영양실조로 눈자위가 벌겋게 물들어 실명을 앞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
지난 94년 4월부터 3개월 동안 계속된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내전에서 1백만명의 양민이 학살된 후 인근 자이르, 부룬디, 탄자니아로 피해간 르완다 난민들이 집단 거주하는 난민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비극적 풍경이다.
깡통속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지와 오물이 무더위와 뒤범벅돼 참을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가운데 가죽뿐인 젖가슴을 어린 것에게 물린채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과 두어살 쯤 더 되어 보이는 소녀 무릎에 죽은 듯 숨죽이고 누운 너댓살짜리 소년은 지구촌 곳곳에 만연한 굶주림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하다.
전 세계 기아 실태
현재 전 세계의 기아 인구는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와 중남미, 그리고 동유럽 등지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빈곤인구 산출은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에 그 정확한 통계 산출에는 어려움이 있다.
유엔 개발계획(UNDP)이 산출한 95년 기준 세계 빈곤인구 현황을 보면 전체 인구 57억5천만명 중 27.2%에 이르는 15억6천4백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그 만큼의 인류가 절대빈곤하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별로 아시아가 전체 빈곤인구의 61.6%를 차지, 극빈자 10명 중 6명이 아시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아프리카(17.3%), 중남미(9.9%), 독립 국가연합(4.8%), 유럽ㆍ중동ㆍ북아프리카(3.8%), 북미(2.6%)순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같은 비극은 과연 어디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국제 식량농업기구 등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는 인류의 4배를 먹여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식량자원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 곡물의 47%를 가축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 잘 사는 나라 인구 10억이 전 세계 부의 82.7%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 전 세계가 소비한 군비는 세계 인구 1인당 미화 1백80달러이다.
비극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교회의 나눔 노력
이 시대의 살아있는 성녀로 추앙 받는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은 우리가 가진 바를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못 나누느냐고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빈곤의 비극은 오직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는데서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각종 원조기구들을 통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년 전 독일에서 처음 태동해 현재 전 세계 1백43개국에 조직돼 있는 까리따스는 긴급 구호지원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교회 원조기구이다.
각국 까리따스의 연합체로서 국제 까리따스는 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된 몬띠니 추기경의 후원에 힘입어 1950년 로마에 본부를 두고 창설됐다.
자연재해나 전쟁, 내란 등으로 시급한 긴급 구호지원의 조정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국제 까리따스는 각국 까리따스의 원조 요청을 심의, 선진 20개국 까리따스에 요청서를 발송한다. 요청을 받은 까리따스는 자국의 분담금을 본부로 보내거나 긴급시에는 직접 보낸 후 본부에 사후 보고하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원조액은 대체로 연간 5천만달러(약 4백억원)정도로 추계된다.
브라질의 알퐁소 그레고리오 주교가 총재로 있는 국제 까리따스는 그외에도 각국간 정보 및 인력 교류에도 큰 영향을 담당한다. 또 뉴욕, 로마등 굵직한 국제기구 본부가 위치한 곳에 대표단을 설치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국제적 압력과 로비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한국, 나누는 교회로
한국은 6ㆍ25 직후 미국 가톨 릭구제회 등으로부터 물자원조를 받았고 60년대와 70년대에는 주로 유럽쪽에서 개발원조, 그리고 80년대에는 사회운동 분양에 있어서 외국의 원조를 받은 바 있다.
전쟁의 와중에서 굶주림의 뼈저린 경험을 한 바 있는 한국교회는 이제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성장했다. 해외원조 기금의 재원인 사회복지주일 2차 헌금에는 모든 교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 까리따스, 즉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국제 까리따스의 19개 이사국의 하나로 선출되기도 했다.
지난 92년 주교단이 형제적 사랑에 바탕을 두고 해외원조에 적극 나설 것을 천명한 이래 한국교회는 나눔의 정신을 점차 확산시켜 왔다.
지난 93년 한국교회는 40개 긴급 구호사업에 10억 4천4백만원, 94년에는 55개 사업에 10억2천3백만원, 그리고 95년에는 36개 사업에 11억5천8백만원을 지원했다.
이는 한국교회 전체 신자 1인당 평균 3백원을 헌금한 셈이 된다. 한편 지원금은 50원으로 아프리카 난민의 식사 한끼, 5백원으로 결핵 치료제 1주일분, 1천원으로 항생제 1백 캡슐을 제공하고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금까지 주로 아프리카 지역의 긴급구호에 지원이 집중됐다고 보고 아시아 지역의 개발사업, 중남미 사회운동에 대한 지원 확대등 지원을 다변화,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아직 국내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지원할 곳이 많은데 해외원조에까지 나설 여유가 있겠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교회는 『원조활동의 본래 의미와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복음의 요청에 따른다면 해외원조는 이 시대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
가난한 이를 돕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거창한 논리보다 단순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만이 커다란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나눔의 실천이 사회와 국가 전반으로 확산돼나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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