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문제
한국의 종교 풍토
선교 2백주년이 지난지도 벌써 10여 년, 오늘날 3백40만의 신자를 확보한 한국 천주교회는 어언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민족 복음화를 위해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만큼 언제나 세속과 천국, 현세의 가치와 영적 세계간의 긴장 속에 살게 된다. 그런가 하면 교회는 자기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전통에 뿌리를 박거나 적어도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성장 발전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비주의 문제는 우선 한국인의 종교 심성(心性)과 그리스도교의 성격을 살펴보는데서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 같다.
한국인의 일반적 종교심성은 옛부터 토착화 된 샤마니즘(shamanism:巫敎)내지 원시 주술적 민간신앙과 5세기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 유교, 도교 등 외래 종교에 의해 형성되었었다. 아시아 지역의 보편적 사상이었던 불교, 유교, 도교 등이 한반도에 들어와 쉽게 수용되어 크게 발전한 것도 한민족의 역사적 뿌리에 이미 신화(神話)나 무속(巫俗)신앙이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민족에겐 만물이 모두 신령(神靈)한 존재였다. 일월성신뿐 아니라 명산대천 (名山大川), 고목거수, 기암괴석에도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었다. 이와 같은 정령(精靈)사상과 신물(神物)사상은 한민족의 종교적 근간이었다. 한민족의 일반적 종교심성은 현재 6백여 종으로 추산되는 신흥종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철저한 현세기복성(現世新福性)과 신비주의 성향 및 혼합종교성(Syncretism)이 주요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하늘」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령들을 섬겨온 한민족은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 등 고등종교에서 총족시킬 수 없는 종교적 욕구를 다신론(多神論)내지 범신론적(汎神論的)인 무속(넓은 의미의 주술적 민간신앙)과 또 고등종교의 무속화에서 만족하려 했었다.
또한 신흥 종교가 상당수의 민중을 사로잡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현세적 이익을 약속하고 제시할 뿐 아니라 교주(敎主)의 신비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라 하겠다.
신흥종교 교주들은 무교에서 볼 수 있는 류의 신비체험을 주장하고, 신흥종교의 신관이나 수도방법에서도 무교적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신탁(神托)을 받으며, 운명감정가, 복술가를 찾아가 사주를 보고 점을 치며 정초(正初)에는 토정비결을 보고 풍수지리, 정감록 비결을 믿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것을 보아서도 한국인의 종교심성에는 철저한 현세기복성과 두르러진 혼합주의 및 신비주의 성향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 탁월성
이러한 한국의 종교적 풍토와 배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탁월성을 「계시종교」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계시진리를 믿음으로써 신앙생활을 영위한다. 숨어계시고 불 수 없는 영이신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 자신과 구원의 경륜을 인간에게 밝히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셨으나 신약시대에는 오직 당신 아드님을 통해 드러내 보이셨다(히브리1.1).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의 (볼 수 있는)모상, 즉 하느님 자신의 계시요 또한 밝혀진 구원의 신비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영원한 말씀(로고스-진리, 지혜, 道, 法)을 통해서 숨겨진 구원의 경륜을 소상히 드러내셨다. 성부의 빛과 진리인 성자 그리스도는 만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생명으로써 누구나 그분을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릴 특권을 지닌다(요한 1.11~12), 즉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는 그분을 통해 성부를 알고 하느님과 사랑의 친교를 맺으며 마침내 하느님 자신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는 신비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된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 안에 머무는 이, 성령의 인도대로 살아가는 이야말로 은총생활 즉 신비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비생활은 소수의 특정인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이 즉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는 이는 누구나 신비체험이 가능하다. 넓은 의미로 신비생활이란 다름 아닌 은총생활이며, 하느님의 현존 속에 살아가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따라서 누구나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으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다운 덕행-성령의 열매(갈라 5,22~26)-을 지닌다. 이때 신앙생활 (은총생활 및 신비생활)은 무르익고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신앙생활에서 수덕적 면과 신비적 면을 엄연히 구분해 왔으나 이 양자는 동일한 은총생활의 내용인 만큼 구태여 구분하기 보다 영성생활이란 개념아래 하느님을 향한 삶과 하느님과의 일치생활로 본다.
우리는 신비생활의 개념을 우선 이와 같이 넓은 의미로 받아들인 후 협의의 신비현상이나 신비체험에 관해 살펴봄이 순서일 것 같다.
신비주의와 신앙생활
해방 이후 6ㆍ25 동란을 전후하여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와 60-70년대 정치 및 경제적 변혁기에 신흥종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러한 시기에 신흥종교 교주들은, 제 나름의 신비체험을 주장하며 신도들로 하여 카리스마적 인물로 인정받음으로써 많은 대중을 모으기에 급급했다.
그들 중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이비 교파나 범죄집단으로 간주된 사교 (邪?)교주들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이러한 혼란기, 변혁기 일수록 대중들은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모종의 신비체험이나 기도의 영험으로 해소하고 현실도피로써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 정신적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특히 개신교의 부흥회나 기도회에서는 입신(入神), 예언, 치유, 방언 등의 은사체험을 으레 강조하였었다.
1970년 초에 가톨릭에 도입된 성령쇄신 운동은 한국교회의 신심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카리스마 운동은 성령의 능력으로 개인이나 가정을 성화하고 사회와 온 세상을 새롭게하여 하느님의 나라건설에 이바지하려는 운동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와 감화를 받아야 하는 만큼 언제나 성령의 활동에 민감해야하지만, 신심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이요 삼위이신 하느님 자신이므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성령께 대한 신심보다 강조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의 현존보다 성령의 은사가 더욱 중요시되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성령의 은사는 교회 건설과 공동 유익을 위해 각 사람에게 분수대로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개인이 받은 은사를 언제나 교회의 선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지 반성해야 한다.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들 중 사랑이 첫째요, 봉사의 은사가 기적, 치유, 방언, 방언해석 등의 득은 보다 우선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상한 언어, 치유 등의 현상이 성령 충만이나 성령 현존의 필연적 증거가 아니고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야말로 성령을 모신 이들에게 나타나는 결과요 품성(品性)이다(갈라 5.22 참조).
또한 성령께서 베푸시는 예외적 은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강조는 재래의 무속신앙과 결부됨으로써 성령의 은사를 주술적 능력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현세 기복 신앙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음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직 복음 선포 지역이며 현세기복적 신비주의적 정감적(情感的)심성에다 혼합종교성이 짙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카리스마 운동이나 갖가지 신심행위에서 개인외 주장보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또 개별적 체험보다 보편적 신학원리를 중시해야 함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신심생활에서 본성작용인 정감적 충동과 성령의 작용을 식별하지 못하고 본성작용을 하느님의 초자연 활동으로 오인할 때 쉽게 자기기만, 도취감, 거짓된 평화와 위로 등에 사로잡혀 갖가지 영적 오류를 낳고 구원에 장애가 되는 결과를 초래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 때문에 카리스마 운동에서는 무엇보다 영의 분별이 중요하다.
신비현상과 영의 분별
신비문제는 영의 분별과 결부되므로 신비현상과 신비체험에 관해 언급할 때 영의 분별에 관한 일반 원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요한 4,1).
초대 교회부터 오늘날까지 아니 세상 종말까지 성령이 교회를 진리로 인도하고 성화하며 갖가지 은사를 통해 활동하는 한 영의 분별은 언제나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 널리 보급되고 있는 카리스마 운동을 비롯하여 신비적 성향을 지닌 많은 신심운동에서 또 교회쇄신 및 참된 복음의 수호와 세상을 향한 효과적인 복음화 활동에서 영의 분별은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비상한 신비현상과 영의 분별(또는 식별)에 관한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원리를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1.비상한 신비현상-시현(示現) 즉 환상을 봄, 영어(靈語:신령한 말씀을 들음), 계시를 받음, 관심(觀心:타인의 마음을 꿰뚫어 봄),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음, 오상을 받음, 동시에 두 곳에 나타남(同時二處現存),향기를 발함 등등 여러 가지 현상-은 반드시 덕행이 출중한 이에게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들은, 교회의 선익을 위하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흔히 성덕을 증거하는 표시가 될 수도 있다.
2.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 중에서 정상(正常) 을 벗어나는 다소 신비로운(Paranormal)것들-정신감응, 초감각적 감지(感知)등 심령과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이 있어서 아직 현대과학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자연적인 것으로나 악령의 소행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면 결코 초자연 원인(하느님)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즉 이상한 현상이면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나 기적적인 것으로 보지 말 것이다.
3.이와는 반대로 그 어떤 신비현상이건 모두 자연적인 원인에로 돌리려는 것, 즉 초자연 현상이란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4.선한 영(성령)과 악령은 영이 맺는 열매로써 식별된다. 성령의 열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애덕이다. 애덕은 모든 덕의 근원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며 바로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갈라 5,22~23:로마 14,15 등 참조).
5.영의 식별의 최고 기준은 애덕(사랑)외에도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과 이웃에 대한 헌신적 봉사 및 그리스도 중심의 내적 생활로써 교회의 선익에 이바지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냄이다.
6.예를 들어 추정된 사적 계시의 진위를 판가름해야 할 경우 아래사항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사계시로 주장되는 내용이 교회의 전통적 교리와 윤리에 어긋남이 없으면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예언이 성취된 사실 자체로 그 계시가 진실된 것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못 된다. 왜냐하면 예언하는 이의 탁월한 본성적 식견으로 알아맞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세하고 장황하며 필요 이상으로 증명과 이유를 늘어놓는 계시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하느님의 계시는 대개 간단명료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계시로 인해 악이 충동되거나 또 선이 권장되어도 더 큰 선을 행하는데 장애거리가 되면 그것은 신빙성이 적다.
△계시가 진실한 경우, 계시받는 이는 대개 겸손, 양순, 인내, 순종, 세속을 멀리함, 편견이나 위선이 없음, 선행에 열성을 다함, 자애와 평화가 넘침 등의 덕성을 드러낸다.
7.성령의 은사가 이례적(翼列的)인 것이건 통상적인 것이건 어떤 경우든 교회의 유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언제나 그것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도직(주로 복음선포와 사랑의 봉사)을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직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므로 이례적인 특은을 결코 경솔히 청하거나 자랑할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은사의 진위에 대한 판단과 그 온당한 행사 및 관리는 교도권자(교황과 일치하는 주교)의 몫이므로 누구나 앞질러 판단하거나 은사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전통과 공의회 문헌은. 교도권자에게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모든 것을 분간하여 좋은 것, 참된 것을 보존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헌장 12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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