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날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가17, 34)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오늘은 주님의 날 즉 심판의 날이다. 오늘 선과 악이 갈라져서 선한 쪽은 구원을 받고 악한 쪽은 끝내 멸망의 길로 치닫는 운명의 날이라 예수의 십자가 양 옆에 한 쌍의 동료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그들은 예수의 사형선고 때 예수대신 석방된 반란자 바라빠와 함께 잡힌 죄인들이다(대목 352 참조). 그들은 모두 지금 예수와「함께」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는 숫적으로, 물리적으로 같이 있고 또 하나는 내적으로, 마음으로 예수와 같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두 사람이 45cm에서 120cm의 거리를 두고 있을 때에 그 공간을 친근거리라고 부르며 이 거리 안에서는 서로 시각적으로 알아 볼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라고 한다. 예수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달려 있는 두 강도는 예수와 친근거리에 있다.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화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된다.
왼쪽의 강도는 죽어 가면서도 마음을 돌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생각없이 행동하였다. 『당신은 메시아(왕)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라고 희롱하였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현장에서 들은 대로 그저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편에 달렸던 또 다른 강도는 예수와 가까이 있으면서 진정으로 자기를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돌렸다.
그는 일생 동안 죄 많은 생애를 한순간에 돌이켜 보고 은총의 기회를 붙잡았다. 예수님과 친근 거리에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우선 자기 죄에 대한 뉘우침이 있다.
『우리는 죄를 지었으니 벌 받아 마땅하지만 이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동료 죄수를 꾸짖으며 예수의 무죄함에 대한 확신을 신앙고백처럼 밝힌 말이다. 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알아본다고 이 우도(右盜)는 이 말을 할 때 이미 착한 사람으로 개조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전에 예수께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이 하느님 나라를 설파하고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설을 전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요청으로 알 수 있다.그는 당장 현세적인 이익을 청하지 않고 바로 하느님 나라를 구하였다. 그도 죽어가는 처지에 고개를 예수께 어렵사리 돌리며 『예수님, 예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이것은 예수께 대한 친근기도이다. 예수께 대한 기도는 이렇게 예수님과 가까이 같은 고통을 받으며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가식없이「당신과 나」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그 기도는 꼭 받아들여진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낙원은 흔히 말하는「파라다이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기인하는 말로 「울타리로 보호된 아늑한 정원」이란 뜻이다. 구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기 전에 살던 곳을 가리켰고(창세 2장~3장 13, 10: 에제 28, 13: 이사 41, 3)신약성서에서는 의인들이 거처라는 뜻으로 쓰여졌다(사도 2, 7: 고린후 12, 2~4). 성서 외적인 레위문서는 메시아가 이 거처의 문을 열 것이라고 전한다.『오늘 나와 함께 들어가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이 영광의 날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의 구원사업의 첫 열매는 놀랍게도 강도의 죄명으로 함께 십자가에 죽은 우도가 되었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꼬 복음서에서는 십자가상에서 같이 형벌받던 강도들도 예수를 희롱하였다라고 했는데 이 두 복음사가는 목격자도 아니고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듣지도 않았다. 다만 복음서를 쓰기전의 구전(口傳) 으로 내려오는 전승을 후대에 알리면서 예수가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의 조롱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고 예레미야서에 『그가 강도들과 한패였더냐?』(예레 48, 27)라는 말씀의 성취를 고려에 넣었던 것이다.
한편 이 상황을 자세히 전하는 루가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수난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부인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루가 24 ,10)복음서에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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