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가명ㆍ라이문도ㆍ44세)씨는 부인과 두 딸을 두고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한 가장이다. 아이들에게는 자상하고 전지전능한(?)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아내에게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자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씨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모 대기업에 취직해 정상적인 승진의 길을 걸었으며 대학원 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 대학원 졸업후 선을 본 김씨는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을 고려하게 되고 자연히 부인의 신앙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리반에 나갔다.
당시의 심정을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부인될)사람이 좋았죠. 그런데 그 사람이 지닌 종교적인 심성이 나를 참 편하게 했어요. 학교에서는 이공계열 서적만 뒤적이고 직장에서는 연구실에 틀어 박혀 삭막한 삶을 살던 나에게 동반자가 생기고 부수적(?)으로 종교를 갖게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지요』
김씨의 결혼생활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만큼 행복했다. 비록 퇴근이 늦어 신심단체나 액션단체에 가입할 여건이 되지는 못했지만 부인과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여가를 즐기며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왔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고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씀씀이가 많아진 김씨는 집안경제를 생각해야 했다. 적지않은 월급이었지만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기에는 양이 차지 않았다. 김씨는 여유와 풍요로운 삶의 질을 중요시했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안정이 중요하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었다. 직장생활의 한계를 가끔 겪어오기도 하던 터라 힘들었지만 사표를 내고 친구와 함께 오퍼상을 시작했다.
『사업이란게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김씨는 자금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쳐야 했다. 업주들과 교분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술집을 드나들어야 했고 2차 3차 하다보면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 사업을 위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자리를 주선하는구나」하는 소극적인 죄의식을 가졌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러나 술자리가 반복되면서, 또 손님을 접대하는 입장에서 김씨 자신도 술자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했다. 음주량이 많아지면서 자제력을 잃게되고 일행과 함께 외도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생겼던 것이다. 이밖에도 김씨의 윤리의식을 좀 먹는 일은 많았다. 탈세를 위해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했고 명절이면 크고 작은 뇌물성 돈봉투를 돌려야 했던 것이다.
사업체를 꾸려가기 위한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김씨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풍토에서는 어쩔수 없는, 관행이 되다시피한 이런 일들이 막상 신앙인 김종호씨 자신에게는 큰 갈등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고해성사를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돈 좀 적게 벌고 마음편히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어디 사업이란게 그렇습니까?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동업이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힘들었습니다. 갈등은 쌓이고 옳지 못한 일은 반복되고...고해성사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김씨는 힘들었지만 주일미사는 참례하려고 노력했고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미사강론을 듣던 김씨는 더이상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부는 대수롭지 않게 「신앙인의 죄의식」을 얘기하면서 흑백논리 식으로 죄에 빠진 인간을 사정없이 질타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주변 환경들 때문에 어쩔수 없었음을 핑계 삼아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신부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 강론은 내 신앙의 끈을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김씨는 3년째 냉담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열심히 성당에 다닐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실천못하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많은 신앙인들이 알게 모르게 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우리 교회는 죄많은 인간을 무조건 단죄하는 곳이 아니라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는 곳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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