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이라 비교적 한적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찾은 부산 성모여자고등학교(교장=조용주) 교무실의 분위기는 의외로 얼어붙은 바깥 날씨를 녹이고도 남을 열기로 가득했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한 단면을 보는 안쓰러움이 잠시 스치긴 했지만, 그러나 곧 선생님들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에서 제도를 탓하기보다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열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성모여고는 1962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에 의해 설립됐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소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수예교실을 운영하던 수녀회 측은 여성교육의 시급함을 깨닫고 61년 성모여중 개교와 함께 64년 성모여고를 개교했던 것이다. 이후 79년 부산교구에 학교 운영권을 양도하기까지 수녀회의 헌신적인 교육봉사는 오늘날 명문사학이라는 전통의 근간을 마련했다.
황령산 기슭에 자리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모여고의 교정은 30여 년 역사를 말해주듯 짜임새 있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아름드리 잣나무와 사철나무가 도열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기에 충분했다.
교정을 한 바퀴 돌도록 닦아놓은 산책로에는 교목인 측백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고목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어 어디 수도원에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하긴 교정이라기보다 수도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학교 뒤편에 수녀원이 있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어 여기에 딸린 자연환경이 학생들에게 정서적인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와 교육환경을 지닌 성모여고에 요즘 작은 자랑거리가 하나 생겨 교직원들과 재학생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김헌옥양이 부산지역 인문계 수석을 차지한 것이다. 역사를 지닌 명문사학으로서 지역사회의 신망을 받고 있고, 지난해 대학진학률이 88%에 이를 만큼 학업성취도에서도 타 학교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뉴스거리로 취급되는 「특출한 한 사람」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모여고는 지난 85년부터 4년 연속 지역 명문 부산대에 최다 합격자를 배출하는가 하면 87년 학력고사에서는 오정아양이 전국 수석을 차지해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학교의 명예를 더 높이기도 했다. 부산의 공단지대에 위치해 지역 환경이 비교적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지역민의 인지도가 높아서인지 성모여고는 고교일시 「선지원제」 실시에도 큰 걱정이 없다.
다 같은 교육 여건 하에서 타 학교와 비교해 더하고 못한 것이 별반 없음은 누구나 아는 것. 그러나 성모여고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교육환경이 있으니 바로 기숙사 운영이다. 수녀원에서 실비로 운영하는 기숙사는 부모 없는 학생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심성을 체험하고 키우기에 좋은 여건이 돼 예비선교나 성소계발의 텃밭이 되고 있다.
「진리에서 애덕으로」라는 교훈을 가진 성모여고의 교육방침은 좀 독특하다.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여성교육에 주안점을 두면서도 발목까지 덮이는 30년 전 교복을 아직도 고집(?)할 정도로 고전적인 여성상 구현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 어쩌면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성모여고의 이 같은 교육방침이 불상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학교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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