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남성이, 활동은 여성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지난해 12월27일 저녁 서울의 한 성당. 성탄절로 분주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잠시 짬을 내 그간 성탄절 전례 준비로 고생한 본당 신부를 위로하기 위해 사목위원과 단체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30여 명 신자 가운데 여성은 겨우 3~4명 뿐. 여성 분과장과 구역 분과장으로 있는 몇 명만이 참석한 것이 고작이었다.
조금 지나치다 싶은 느낌은 들지만 이날 모임이 오늘날 한국교회 전체 본당의 사목 구조를 대표하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본당 사도직 단체의 요직이란 요직은 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현실에서 「정말 교회 내에 여성이 설 자리는 없는가」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교회를 사목하거나, 교회 사목에 직ㆍ간접으로 동참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다. 성직자가 모두 남성이고 사목위원과 단체장도 거의 남성이다. 교회만큼 여필종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 천주교회 남녀 신자들의 교회활동 참여율과 본당 사목위원들의 구성 성비는 교회 내 여성들의 소외현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1994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여성신자 비율은 60%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추세이다.
본당에 있어서도 전례나 사도직 단체, 봉사활동, 신심활동 등에 참여하는 여성신자의 비율은 남성보다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일 미사를 비롯한 각 전례에 참석하는 여성신자 비율이 여느 본당에서나 마찬가지로 어림잡아 60~70%정도가 되며 반장 월교육, 성서 모임, 성령 세미나 등과 같은 모임에 참석하는 여성신자들의 비율은 이보다 더욱 높아 80~90%까지 올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거의 모든 사도직 단체에서 중요한 직책은 남성들이 대부분을 맡고 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게 몇몇 교회 인사들의 뼈있는 지적이다.
“머리는 남자 몸은 여자,,
이 같은 현상은 「머리는 남자, 몸은 여자가」하는 식의 가부장적이며 종속적인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직도 교회 내에 뿌리깊이 박혀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사실 교회 내에서 여성 활동의 현주소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여성들의 활동과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한 사목자의 말처럼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몫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랜 본당사목 경험이 있는 한 사제는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되찾아 주는데 많은 역할을 해왔으나 실제적으로 교회 내에선 남성과 같은 동등한 권한과 기회를 여성에게 주지 않고 있다』며 『이는 사목자들과 남녀 할 것 없이 신자들 스스로가 교회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고 제한성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회 내 여성들을 사도직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켜라」는 조언을 귀가 아플 정도로 신학생 시절부터 들어왔다는 그 역시 『여성 신자에게 일을 맡기면 왠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고 믿음직스럽지 못해 주저하게 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여성신자들에 대한 편향적 성향은 본당 활동을 오랫동안 열심히 해온 남성신자일수록 더욱 고착돼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모 본당 한 남성 사목위원은 『사목회의를 하면 여성 단체장들이 꼭 엉뚱한 얘기를 꺼내 주제를 흐리게 하고 시간을 지연시킨다』며 『비록 현장 활동은 미진해도 본당 사도직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현실성이 뛰어난 남성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직까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단정 지었다.
또 다른 한 남성 단체장은 『교회 활동보다 가정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아내, 어머니, 며느리 등 여성신자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복음 정신에 부합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로 여성들의 교회 참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남성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부분의 여성신자들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해 버리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본당에서 여성 단체장직을 맡고 있는 최모씨는 『대부분 회의에서 여성 단체장들이 남성들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라며 『숫자적으로 여성이 적어 소신을 밝히지 않는 것보다 아직까지 여성신자들이 남성들의 견해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종속적인 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닌가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남성 중심의 편향성 바로 잡아야,,
서강대 박문수 신부는 반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농촌본당보다 대도시본당의 여성신자 구성 비율이 높은 현 추세를 감안할 때 여성들의 교회 참여, 특히 단체의 책임자로서의 여성들의 활동 여건을 확대,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한국사회의 지역사회 변동과 복음화」라는 논문에서 박 신부는 『그간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참여 기회가 계속해서 좋아졌기 때문에 사회 복음화를 위해 여성신자들에 대한 전문적인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들의 사도직 참여 확대를 주장하는 여성 공동체의 한 관계자는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일할 경우 남성들이 그 여성에 대해 「설치는 사람」으로 백안시하는 경우를 자주본다』며 『남성 중심의 왜곡된 편향적 사고방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사목자들이 교회 사목에 있어 가능한 부분에는 여성들을 책임자로나 협력자로 우선적으로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마리아를 닮은 여성 필요,,
앞으로 사회 복음화에 있어 여성들의 참여와 역할이 더욱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한 부산의 한 신부는 『여성들의 전문 지식과 여유있는 시간이 복음화를 위한 강한 힘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적인 생활에 바탕을 둔 신앙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교회 내 여성 인력의 활용을 위한 개선점은 우선 여성들을 위한 교육이 부족하며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활동의 올바른 방향은 여성이 남성들의 직책과 역할을 이어받는 데에 있지 않고 성모 마리아를 닮는 데에 있다』고 강조한 그는 『마리아를 닮은 여성이 많을수록 한국교회가 더 교회다워질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교회 사도직 단체장의 여성 참여 확대 문제는 제3천년기 새로운 시대의 복음화를 준비하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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