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5, 33~36 : 마태 27, 45~49 : 루가 23, 44~45)
악당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맨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정오 사이니까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두세 시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정오가 되자 예수께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 죽음의 순간은 인류 구원의 결정적인 순간이다. 구약시대에 중대한 일이있을 때마다 하느님의 가시적인 개입이 있었듯이 이제 마지막으로 하늘의 징표가 나타났다.
제6시, 즉 12시가 되자 갑자기 하늘이 캄캄하게 되어 암흑이 온 땅을 뒤덮었고 이 현상은 제9시, 즉 오후 세시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은 그들의 니산달, 오늘의 3ㆍ4월, 따뜻하고 화창한 봄 날씨의 계절이다. 그리고 과월절 전날은 보름달이 깨끗이 비치는 날이며 낮은 햇빛이 찬란하다.
그런데 12시가 되자 갑자기 해가 빛을 잃고 말았으니 누가 보아도 이상한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동안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그저 침묵속에 세 시간을 지내셨다. 그는 마지막 고통을 되씹고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로부터 신성모독한 자로 몰렸고 이방인들 손에 넘겨져 악한 취급을 받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온갖 모욕을 당했고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고독의 고통을 견디여 내야만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받은 고통, 이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라고 하셨다(Ⅰ요한4, 20).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버림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겠는가? 지금 예수께서는 그 어느 시험보다도 혹심한 시험을 받고 계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거의 자연적으로, 아니면 본능적으로 고통받는 종의 기도 시편 22장을 큰 소리로 읊었다.
그러나 기력이 핍진하여 1절을 부르고는 그쳤다「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이 말씀은 절망의 말씀이 아니다. 이어지는 기도의 내용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 뜻을 따른다는 믿음깊은 내용이다. 2절 이하는 이렇게 이어진다. 『나의 하느님, 온 종일 불러봐도 대답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 하십니까? 그러나 당신은…거룩하신 분…그들은 당신을 믿었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야훼를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 주시겠지」…날 때부터 이 몸은 당신께 맡겨진 몸.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느님이시니 멀리하지 마옵소서』(시편 22, 2~11).
예수께서 말씀하신 첫 마디『내 하느님…』이란 기도를 복음사가들은 원문 그대로 전하였는데 마르꼬는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하였고 마태오는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적었다. 『엘로이』와『엘리』가 서로 다른 것은 마르꼬는 외국 땅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하여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예수 자신이 사용하던 아라메아어 발음으로 적었고 마태오는 히브리 본토인들에게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발음으로 적어서 그렇게 되었다.
『엘리, 엘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십자가 곁에 서있던 사람들은 『저것 봐,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네』라고 말하였다. 엘리야는 민족이 곤궁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구조자로 인식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구조자 엘리야를 부르는 것으로 오인한 구경꾼 중 하나는 예수의 기도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들렸던지 연민의 생각이 들어 해면에 신포도주를 담뿍 적셔 갈대 끝에 꽂아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의 입에 갖다 대주었다. 입술이라도 좀 적시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말리면서『그만 두시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나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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