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
하느님을 모르는 자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보고도 존재하시는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업적을 보고도 그것을 이룩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또는 별의 회전, 혹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 하늘에서 빛나는 것들을 세상을 지배하는 신들로 여겼다. 만일 이런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것들의 주님이 얼마나 더 훌륭하신 가를 알아야 했을 터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아름다움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이런 것들의 능력과 힘에 놀랐다면 마땅히 이런 것들을 만드신 분의 힘이 얼마나 더 큰가를 깨달아야 했을 터이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들을 만드신 분을 알 수 있다(지혜 13, 1~5).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로마 1, 19~21).
요컨대 이미 인간은 계시를 보편적으로 받았는데 그 방식이 바로 성사적이었다는 것이 살펴본 지혜서와 로마서의 의도이다. 그러기에 기록된 성서와 기록되지 않은 성전의 충실한 해설자인 교회의 살아있는 교도권(계시헌장 10항)도 인류 구원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펼치면서 보편적 계시로 말미암아 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밝히고 있다.
모르는 신(神)을 영상(影像)속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하느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니,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며(사도 17, 25~28)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디모 전2, 4). 사실 자기의 탓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교회헌장 16항).
결국 구원을 위한 계시의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교 밖에서의 성사유무를 말한다면, 그리고 방금 살펴본 성서 본문들과 교도권의 해설을 근거자료로 제시한다면 비록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성사는 분명히 그리스도교 밖에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은 이미 그리스도교의 성사라는 범주에 속하는 성사적인 것 자체들이다. 그것들은 성사가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존재한다.
3. 성사의 기능
1) 성 아우구스띠노 식 정의에 의한 이해
성사의 기능을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또 다시 성 아우구스띠누스의「정의」에 입각해서 할 수 있다. 즉 성사는「그 무엇」을 표상하는 기능을 지닌「거룩한 표상」이다.
그 점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표상 자체와 그 표상이 발휘하는「표상 기능」에 관하여 좀 더 설명해 보겠다. 그러나 우선 우리말 표현법에 의하면 표상(表象)은 상징(象徵)과 같은 것(신기철ㆍ신용철의 새 우리 말 큰 사전의「표상」참조)이기 때문에 성사를 거룩한 표상이라고 하든 거룩한 상징이라고 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겠다.
표상(상징)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만들어 진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든 어떤 물체 즉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들을 수 없었고 볼 수 없었으며 만질 수 없었기에 알 수 없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공적으로 인정하도록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나 생각 그리고 의도를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만났을 때 서로 들을 수 있는 말과 보이는 몸짓을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말로서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고 생각될 경우 몸짓을 더해가며 하기도 하고 몸짓만으로 의사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고 여겼을 경우 더 많은 말을 덧붙여 보충하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이 하는 말과 몸짓이 바로 표상(상징)이다. 그 말과 몸짓은 그 말과 몸짓을 하는 그 사람의 들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생각과 마음을 듣게 해주고 보여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사연도 덧붙이지 않고 이름표만 부착시킨 장미꽃 한 송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받은 사람은 보낸 사람의 의도를 즉시 파악한다. 즉 꽃을 받은 사람은 그 꽃을 통해서 보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때의 장미꽃도 역시 표상(상징)이다. 장미꽃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만질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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