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다가오는 2천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한국 천주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2천년대 복음화」라는 용어는 하나의 구호가 되어 교구의 사목지침서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교구가 이를 위해 구체적인 준비 계획을 발표하거나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역 교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발전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교구 차원의 시노드를 제안한 교구도 있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어떤 절박한 갈증을 반증하고 있는 한 예이다.
이러한 목마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좁혀 놓았던 시민사회와 교회와의 격차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더구나 최근 하루가 멀게 달라지고 있는 시민사회의 변화속도는 실로 아찔한데 교회는 아직도 공의회 이전에 머물려는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니 이러한 갈증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최근 지적되고 있는 위기의식도 결국 공의회의 성과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발전시키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본능적으로나마 이러한 목마름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반갑기 그지없다.
대희년 준비와 관련하여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교회의 솔직한 태도와 용기있는 자세이다. 거듭나고자 하는 가톨릭교회는 지나온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로부터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지금의 몸부림은 일회성 구호나 선정적인 몸짓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황, 주교, 그리고 사제들부터 겸손하고 용기있는 자세로 자신을 세심하게 성찰할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광주대신학교의 이제민 신부님의 「교회-순결한 창녀」는 우리에게 아주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국교회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하고 있는 사목, 선교, 복음화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화두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쇄신의 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교회론을 제시하고 거기에 빗대어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현실을 진단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교회 내의 구성원들의 현 상태를 분석하고 3부에서는 세상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교회를 성찰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한다.
세부적으로 교회의 구조, 사목현실, 구성원간의 관계, 선교방식, 세상과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교회를 분석하는데 그 시각은 놀라우리만치 솔직하고 비판적이다. 여러 잡지를 통해 매우 비판적인 글을 실어온 저자의 저작 활동을 본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나 사제로서 이러한 글을 발표할 수 있다는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의견은 간단하다. 교회는 온갖 중심주의를 벗어버릴 때 진정한 성령의 교회, 구원의 성사,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이러한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 천주교회는 아직도 내적으로는 로마, 성직자, 제도 중심의 교회이며 더 나아가서는 남성 중심의 교회에 머물러 있다. 로마교회보다도 더 로마적인 교회가 한국교회이며 평신도는 아직도 사목의 대상일 뿐 그 고유한 품위와 역할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중심으로 인해 이중의 소외를 겪는다. 교회 안에서조차 여성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단순한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시대의 아픔을 같이하며 문화적 환경을 존중하는 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이다. 정의를 향해, 가난을 향해 그리고 통일을 향해 교회는 열려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밖으로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울타리를 더욱 높게 쌓아가고 있고 내적으로도 교구중심주의로 인해 이기적인 폐쇄성이 높아만 가고 있다. 각 교구마다 신학교를 설립하고 있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마디로 아래로부터의 교회론이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제이다.
이 같은 저자의 관찰은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교회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처럼 과감하고 솔직한 비판은 불가능할 것이다. 현실을 애써 미화하거나 피해감으로써 문제를 은폐하는 것은 결국 교회를 썩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태도가 아니다. 참사랑은 스스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들의 모임이다. 교회가 진정 교회일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슴 저리게 아프면서도, 우리에게도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새삼스럽게 갖게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 한 독자로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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