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서로의 의도나 뜻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발휘하는 물질적(육체적)인 것들을 표상(상징)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표상(상징)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이든 자연적인 상태에서 활용되어져서이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니 사람들 자체가 상징 존재이고 사람들이 발 붙이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실재이다. 따라서 세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온통 표상(상징)으로 가득차 있을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상징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상징 자체들이다.
성사의 기능도 바로 그 표상, 거룩한 표상으로서 지니고 있는 기능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사는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만질수 있는 물질적(육체적)인 것들로 되어 있다. 그 물질적(육체적)인 것들은 들을 수 없었고 볼 수 없었으며 만질 수 없었던 것. 곧 신적인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그 신적인 것이란 다름아닌 거룩하신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사를 『거룩한 표상(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덧붙여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성사가 물질적(육체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성사는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성사에 물질적(육체적)인 것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물질적인 것을 거룩한 것일 수 있게 하는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이 본질적이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표상하지 않는 성사란 없다. 성사는 물질적(육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알게 해주는 거룩한 표상이다. 그래서 성사를 일컬어 물질적(육체적)인 것이자 동시에 신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식으로 성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후 기능 중심으로 성사를 이해하되 발전적으로 접근해 보고자하는 현대의 성서신학적 시도들의 토대이자 근거가 되고 있다. 성사가 표상(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것을 표상(상징)하는지 좀 더 깊고 폭넓은 경험의 차원에서 알아 듣고자 하는 것이 현대 성사신학의 흐름인 것이다.
2) 현대 성사신학적 이해
오늘날 신학서적이나 잡지, 강론이나 종교시간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의 성사 신학적 성사에 대한 이해는 주로 경험적 차원에서 시도했던 것들이자 그 결과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실한 삶과 직결된다. 교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삶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성사는 그리스도론적이면서도 교회론적으로 이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해 역시 마찬가지로 성사의 기능에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예로써 성사를 『은총의 표상들』, 『그리스도의 행위』, 『교회 본성의 표현들』, 『상징행위들』, 『그리스도와의 해후』, 『삶의 제전들』, 『아버지께 대한 예수의 예배에의 참여』 등으로 알아 듣고자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달리 알아 듣고자 하는 시도들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결국 성사를 이해 하고자 하는 경향이 경험적인 차원에서의 것으로서 같기 때문에 현대 성서신학적으로 성사의 기능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 하는 흐름을 살피려 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주제들 아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총의 표상들』, 『그리스도와의 해후』, 『교회의 상징행위들』, 『인간 실체의 변형들』이 그것들이다.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다.
(1) 은총의 표상들
예전부터 지금까지 가톨릭 교리서적들은 성사를 『그리스도께서 은총을 주기 위해 제정하신 외적 표상』이라고 규정해 오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31항 불어판 248면).
이 규정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우구스띠누스의 성사정의 즉 『불가시적인 은총의 가시적인 표상』이라는 기술적인 정의를 그 시발점으로 하고 교부들과 중세의 신학자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해석과정을 거치는 동안 『은총의 효과적인 표상』으로서 표상하는 그것을 야기시키는 기능을 갖는 것으로 자리매김된 것이자 트렌트 공의회(1545~1563년) 제7회기(1547년)에서 가르친 바의 것(덴징어 1601, 1604, 1606~8)을 그대로 전수받아 교리화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이들이 성사를 『그리스도의 표상』이니, 『하느님의 사랑의 표상』이니, 『생명의 표상』이라고 한다든지 『신앙의 표상』이니, 『교회의 표상』이니, 『영적 변형의 표상』이니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은 모두 교리서적에서의 규정을 구체적으로 적용시켜 본 이후의 결과들이다. 요컨대 은총의 표상인 성사는 은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결과에 따라서 앞에서 제시한 예들처럼 달리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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