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1일 규모 9.0의 강진과 14m 이상의 쓰나미로 총 2만여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고 잇따른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15만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물, 채소, 수산물 등의 먹을거리에서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야할 뿐만 아니라, 방사능 누출에 의한 생물체의 변이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거대한 피해상황과 맞닥뜨린 일본 국민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학계를 비롯한 종교계, 환경·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각각 모임을 결성하고,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방사능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원자력발전소 사고 시 닥칠 위험성 등을 알리는 한편,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에 따른 우려를 표명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정부와 원자력발전 찬성측은 원자력발전 정책을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의 남다른 움직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독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원자력발전의 안전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며, 단계별로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시작, 오는 2022년에는 완전한 탈원자력발전, 탈핵사회를 이룰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만큼 재생에너지의 비중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는 천주교창조보전연대,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등과 함께 2월 14~23일 독일 베를린, 하멜른, 빌레펠트, 함부르크 등 독일의 탈원자력발전 재생에너지 중심도시와 환경자연보전단체(BUND), 그린피스 본부 등을 방문하고, 그 속에서 국내 탈원자력발전을 위한 방향을 모색했다. 가톨릭신문은 이번 주부터 그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 견학을 시작하며(프롤로그) Ⅰ - 독일은 탈원자력발전을 어떻게 이뤘나.
독일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전부터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 탈원자력발전이 공론화되면서 1999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폐쇄를 결정했다. 그리고 2002년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그 과정 중에도 원자력발전 확산의 바람을 타고 결정을 번복, 원자력발전을 재도입하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돌아서는 등 혼란이 야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겪은 뒤로는 탈원자력 결정을 더욱 확고히 하기에 이르렀다. 독일 국민에게도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으로 일컬어지던 일본이 돌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후쿠시마 사고 직후 독일 총리는 “전체 전력 수요의 23%를 차지하던 17개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3개월 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가동 중단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다. 25만여 명의 시민들은 항의의 뜻을 담아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등 4개 거대 도시에서 원자력발전 반대 시위를 벌였고, 사고 후 한 달 뒤 시위는 100여 개 도시로 확대됐다.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환경정책(반원자력발전)에 뜻을 가진 정당, 후보가 선출되는 등 탈원자력발전을 위한 여론이 형성됐다.
독일 정부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에너지 공급에 따른 사회문제와 그 해결책을 논의하는 장이었다. 성직자, 대학교수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30명의 외부 전문가를 초청, 11시간에 이르는 TV 생방송 토론회를 갖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토론회는 각 섹션으로 나눠 진행됐으며, 이메일, 전화, 문자 등 시청자들의 참여도 열려 있었다.
위원회는 이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2021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하라는 권고안을 총리에게 제출했고, 결국 지난해 독일 정부는 17개 원자력발전소 중 노후 됐거나 고장으로 멈춰 있는 원자력발전소 7기와 크뤼멜(krummel) 원자력발전소 등을 즉각 폐쇄 조치했으며, 2021년까지 6기를, 2022년까지 마지막 3기를 완전히 폐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이 이처럼 탈원자력발전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기간에 걸쳐 확립한 대안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는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에 다양하게 기여해왔다.
아울러 에너지, 기후문제를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관심과 정책 방향 역시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정책, 제도 정비와 재생에너지 산업 확대는 원자력발전을 통한 에너지 공급 수요를 대체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 사진은 지난해 가동을 멈춘 독일 브레멘시 지역 운터베제르 원자력발전소.
▧ 견학을 시작하며(프롤로그) Ⅱ - 원자력발전이 가진 위험성?
원자력발전은 원자핵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인 원자력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핵분열을 통해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열)로 물을 증기로 바꾸어 발전을 하는 것.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생성된 핵폐기물(사용 후 연료, 발전소 내 방사선 관리 구역 작업자의 작업복 등)은 다량의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어 인체에는 물론 자연 생태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현재까지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장소 등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방사성 물질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사회사목분과와 (사)생명평화마중물이 공동으로 주관한 탈원자력발전 초청강연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관계되고 인간의 기본 생존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재앙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고 탐구, 숙고하며 결단을 내려야한다”며 “원자력발전 과정 자체는 연기가 나지 않고 탄산가스를 배출하지 않지만 그보다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을 양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누적된 고준위 핵폐기물은 약 30만톤이며 매년 1만톤 이상이 쌓이는 데, 이는 수십 만년 동안 보관해야할 방대한 양이다.
방사능 피폭에 따른 위험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방사능 물질은 특히 여성, 어린이, 태아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인공 방사능 물질은 체 내에 그대로 쌓이며 배출이 어렵고, 신체조직과 밀착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체르노빌 주변 지역 주민 암(갑상선 암 등) 발생률이나, 국내에서 실시된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 건강 역학조사 연구 등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돌발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준비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수명이 다 돼가는 노후한 곳이 많다. 발전소 내 고장·정지 사고도 잦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이들이 재해, 테러 등에 따른 안전성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만으로도 바로 지금이 시급한 대책 마련과 탈원자력발전이 절실한 때임을 말해주고 있다.
▲ 견학단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