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들은 은장도를 가슴에 늘 품고 있다가 남자가 겁탈을 하려고 하면 상대방 남자를 찔러 죽이거나 자결을 하는 일이 불소하였다. 이렇게 살인하는 것은 풍교에 도움이 된다하여 무죄일 뿐만 아니라 포상까지 하였다.
우리나라는 열녀의 나라라 할 만큼 열녀는 양반부녀에서부터 천민층, 기녀에 이르기까지 각 층에 걸쳐 열녀가 많이 나왔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공식적으로 나온 숫자만 보더라도 충신 11명, 효자 67명인데 비해 열녀는 3백56명 이란 압도적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나온 숫자가 3백56명이지 실지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란때 목숨을 바꾸어 정조를 지켰으며 끝까지 항거하여 적의 칼에 찔려 죽은 부녀도 상당히 많았으며 강물에 몸을 던지거나 칼로 자결을 하였다. 병자호란때 청병이 밀려오자 부녀자들이 쓰게치마를 쓰고 바다로 뛰어들어 부녀자들이 죽은 시체가 흰 면화송이와 같았다 한다.
당시에 있어서 조혼 풍습에 의해 어린 소녀가 시집갔다가 20전에 청상과부가 되어도 제2의 인생을 찾으려고 재혼을 생각하는 따위는 실절(失節)이요 금수(禽獸)와 같은 행위로 간주되었다. 12~13세 어린 소녀가 정혼만 해놓고 상대방 남자가 죽어도 소복을 입혀 백가마에 태워 시가로 보내면 주위의 차가운 냉대 속에 무서운 시집살이를 하며 한 많은 삶을 살아야 되었다.
삼강(三綱)중에도 남녀는 인륜의 본(本)이라 하여 여불사이부(女不事二父)는 모든 도덕 교화의 기본이며 출발점이라 하여 여성의 지상계율(至上戒律)로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의지할 곳 없는 과부가 아사하는 일이 있더라도『아사는 극소사(極小事)요 실절(失節)은 극대사(極大事)』라고 하였다. 당시 이처럼 내외(內外)니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니 하는 시대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부녀들에게 선교하기도 힘들고 성사(聖事)를 집행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규방생활을 하는 양반부녀들에게는 더욱 힘들었다. 달레의 교회사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남편의 허가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고 거리에 눈길을 던질 수 조차도 없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부인들은 더군다나 박해때는 성사에 전혀 참여할 수가 없었다. 외간 남자의 손이 닿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딸을 남편이 아내를 죽이기도 하고 여자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6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성당에 여자출입구와 남자출입구를 따로 만들고 성당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천주교에서 과부 재혼을 허용한 것은 양반층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동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수절의 관습이 깊이 뿌리 박혀 교우중에 양반부녀들은 거의 재혼을 하지 않았으며 서민부녀들 중에 재혼한 사람이 약간 있었다.
중국에서도 과부 재혼 허용, 교회 집회에 남녀가 함께 모이는 것, 사제가 여교우에게 고해성사 주는 것, 교회에서 세운 의원(醫院)에서 부녀들이 옷을 벗고 진찰받는 것 등이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명나라때는 사제가 특별히 남성과 격리된 생활을 하는 궁중부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집행을 할 수 없어 가성직자를 두게 되었다.
조선시대 유교적인 관습에 의해 남자는 결혼하여 대를 잇고 봉제사를 해야 되며 여자는 결혼하여 삼종지의(三從之義)를 하여야 된다. 조선시대 양반이 딸을 30세가 넘도록 출가시키지 않으면 가장을 중벌에 처하였다. 양반이 가난하여 딸을 출가시키지 못하면 국가에서 결혼비용을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풍속에 미혼남자나 미혼여자가 죽으면 관도 쓰지 않고 삿자리에 말아 매장하였으며 정식으로 장례를 지내지 않는 것이 통례였다. 미혼남녀가 죽으면 죽은 사람중에 정당한 배우자를 물색하여「영혼 결혼식」을 하였다.
이처럼 죽은 사람까지도 결혼을 시킬 정도로 결혼은 반드시 해야되는 것이 우리의 풍속이었다. 사제와 동정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당시 사회에 상당한 반감과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동정녀가 체포되면 더 가혹한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동정녀들은 이런 관습 때문에 과부 아니면 부인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동정을 지켰으며 이 누갈다는 결혼을 하고 동정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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