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이사 55,1)
여느 해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스쳐간 광복 50주년을 아쉬워하며, 뒤늦게나마 지난 50년간 이루어진 한국교회의 성서운동을 짚어본다.
성서운동의 테두리를 명확하게 긋기는 쉽지 않지만, 여기서는 성서 번역과 보급, 성서읽기와 교육, 성서 생활화와 복음 선포 등 성서와 밀접하게 연관된 움직임을 총괄하여 가리키는 말로 간주하고 풀어가겠다.
해방 때까지
우리 민족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나서 처음 만난 성서는「성경직해광익」이다. 이 책은 주일과 대축일의 미사복음(복음서의1/3정도 수록), 묵상과 기도, 실천사항 등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초기 신자들은 이 책을 몹시 아껴 누구나 필사하여 읽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대로 따르고자 애썼다. 비록 성서의 많은 부분을 알지 못했지만 성서의 실천에는 앞섰던 신앙 선조들이었다(달레, 한국 천주교회사 중 16, 58, 66, 73, 120쪽 참조).
박해가 끝난 뒤 필사본「성경직해광익」이 활판본「성경직해」(1892-97ㆍ9권)로 출간되고, 계속해서「사사성경」(복음서ㆍ1910)과 종도행전(1922), 서간묵시편(1941)이 우리말로 나옴으로써 신약성서가 완간되었다. 이는 가톨릭보다 1세기 늦게 들어온 개신교가 1900년에 신약성서를, 1910년에 구약성서를 완간한 사실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늦은 일이었다. 게다가 때때로『우리 교우들이 성서를 읽음이 요긴하다』(1919년ㆍ경향잡지 421호)고 권유하고『성서를 읽지 못하는 교우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자』는 운동(1934년 ㆍ경향잡지 794호)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기의 성서운동은 극히 미약했다. 반면에 서구 가톨릭교회는 1919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성서 사도직 운동과 1943년에 반포된 교황회칙「성령의 영감」으로 인해 성서연구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1945~70년 : 정체기
정작 해방은 되었지만 교회는 민족분단과 동란으로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전에 덕원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찍던 사사성경이 더 이상 내려올 수 없자, 서울에서 개정판 사사성경을「신약성서 상편」이란 이름으로 펴냈다(1948). 그 뒤 이 성서는「복음성서」, 서간묵시편은「서간성서」란 이름으로 공동번역 성서가 나올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한편 선종완 신부는 가톨릭에서 최초로 창세기(1958)를 비롯한 구약성서 17권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옮겨 성서번역사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같은 시기에 시인 최민순 신부가 빼어난 우리말로 옮긴 시편(1968)은 지금까지 전례용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처럼 훌륭하게 번역된 성사가 제대로 읽혀지지 않았으니.
1964년 비교적 열심한 신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4복음을 읽어본 신자는 23.5%, 성서 한 권이라도 갖고 있는 신자는 42.8%였다. 1964년 한 해 동안 개신교가 보급한 성서는 1백62만권, 가톨릭에서 1930년대부터 1964년까지 발간한 성서 총수는 5만1천권에 불과했다(가톨릭 시보 1964.12.6). 성서 없는 성서운동은 있을 수 없으니, 이 시기 성서운동의 미약성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70년대 : 태동기
『교회의 창문을 열라!』가톨릭교회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65)는 성서운동을 부흥시키는 전기가 되었다. 공의회는「계시헌장」을 통해『교회는 성전과 함께 성서를 자기 신앙의 최고 규범으로 늘 간직하고 있으며』(21항),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성서를 가까이 할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선언했다(22항).
이에 따라 말씀의 전례가 대폭 확대되었다. 『하느님 말씀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성서의 보고를 널리 개방할』(전례헌장 51항)것을 결의함에 따라 독서가 1ㆍ2 독서로 늘고 네 복음이 가ㆍ나ㆍ다 해로 나뉘어 봉독하게 된 것이다. 또 공의회가 그리스도교 타 교파와 대화하고 일치를 이루는 탁월한 도구 중의 하나로 성서를 꼽고(일치교령 21항) 성서의 공동번역을 허용함에 따라, 우리 말 공동번역 성서가 1977년에 완간되었다. 이로써 가톨릭교회는 쉬운 우리말 성서 전 권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서강대 신학연구소에서 옮긴「200주년 구약성서」11권(1977년)은 원문에 충실한 새로운 성서 번역의 길을 열었다.
공의회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성서읽기 운동도 벌어졌다. 1970년부터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에서 행해지던 성서공부가 가톨릭 대학생들에게 확산되어 구성된「가톨릭 대학생 성서모임」. (1972. 7)은 유신치하의 암울한 현실에서 고통받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학생운동으로 각광 받았다. 가톨릭 성서모임은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진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계속 커져 1975년에는 어버이와 노인층까지 포괄하는 대표적인 성서운동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성서모임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의 공동협력, 「말씀의 봉사자」란 평신도 봉사자의 양성 및 파견, 나눔 및 실천 위주의 소그룹 공동체 활동 등의 특유한 진행방향으로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한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가톨릭 성서운동을 전담하는「세계 가톨릭 성서 사도직 연맹」(1990년에 가톨릭 성서연합으로 개칭)이 1972년에 결성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978년에 가입하여 성서운동의 경험과 정보를 세계와 교류하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 확산기
1980년을 전후해 한국의 성서운동은 그 지평을 한층 넓혔다. 억압의 현실 속에서 정의와 삶의 의미를 갈구하던 사람들이 성서에서 그 빛과 힘을 찾았던 것이다. 이에 부흥해 부산(1977), 인천(1979), 광주(1979), 전주(1980)등 각 교구는 물론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1973), 성바오로딸 수도회의 시청각 통신성서(1978), 전주의 베소라 성서, 대구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의 성서 강좌, 까리따스 수녀회의 여정(1984), 성서 못자리, 성서 백주간(1992)등이 성서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한국인 성서학자들은 좀 더 원문에 가까운 학문용 성서를 적극적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마르꼬 복음서」를 시작으로 계속되고 있는「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주석판 시리즈와 보급판(1992), 성서위원회 주관으로 제1권 시편(1992년ㆍ개정판 1995)부터 현재 7권 창세기(1995)까지 나온『구약성서 새 번역』이 대표적인 학문용 성서이다. 이 밖에도「성서와 함께」(1973년 창간), 「생활성서」(1983년 창간), 「야곱의 우물」(1994년 창간)등 성서 관련 잡지와 성서 참고서적도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또 한국 주교회의는 1985년에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을「성서주간」으로 설정하여 새로운 전례력을 말씀과 함께 맞이하도록 이끌고 있다.
전망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전개되는 성서운동의 양상은 실로 다양하고 활발하다.
그 결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서를 읽는 신자가 63.2%에 달하고 있다(1987, 가톨릭신문사 조사). 이러한 현상을 보면 가히 성서 붐이라 불릴 정도로 성서운동은 활성화 되어 있으며, 외국에서도 이런 현실에 놀라워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실제로 활발하게 성서운동에 참여하는 신자는 대부분 도시의 중산층 주부와 대학생층이다. 1980년대 들어 여성신자들의 성서 독서율이 남성신자를 추월한 것이 그 반증이다(여성공동체 조사). 아직도 많은 신자들은 성서운동권의 바깥에서, 성서와 교리지식의 부족이 신앙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밝히고 있다(1995,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 조사). 또 성서주간이 10회 이상 실시되었지만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결국 성서보급과 읽기 등 성서운동의 양적 팽창은 상당히 이루어졌으나, 성서운동의 질적 성숙이랄 수 있는 성서의 생활화나 복음화는 여전히 미진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더 요구되고 더 활발하게 펼쳐지리라 예상되는 성서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첫째, 성서운동은 또 하나의 신심운동이나 단체가 되기보다 모든 신심운동의 기초로서 인식되고 강조되는 게 필요하다. 성서교육 역시 지식 위주에서 벗어나 실천과 영성화로 지향해 가야 한다.
둘째, 모든 신자들이『하느님의 말씀으로 육성되』(전례헌장 48항)게끔 말씀의 전례를 충실히 하고, 구역과 반모임에서 거행하는「복음 나누기」를 활성화 하는 게 긴요하다.
셋째, 신자들의 다양한 연령층과 교육의도에 맞고 성서운동의 단계에 따른 적절하고도 다채로운 성서 교재나 교육방법을 계발ㆍ시행하고, 아울러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성서운동을 펴고 있는 각종 성서운동체들이「교회 안에서 함께」바람직하게 성장하도록 조정하고 인도하는 전담조직과 센터가 필요하다.
넷째, 성서는 그리스도교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문화의 주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성서의 번역은 교회와 전문 성서학자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 안에서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엄선된 성서 주석서와 관련 서적의 출판도 긴요하다.
다섯째, 정보화 사회를 맞아 평화방송과 평화 TV, CD롬이 나 비디오, 컴퓨터 통신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한 성서운동도 필요하다. 불교권이 팔만대장경을 CD롬으로 내놓기 위해 입력을 완료했다는 사실(1996.1.19)이 한 본보기이다.
르네상스기를 맞아
급격히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경전의 르네상스도 이루어지고 있다. 경전에서 삶의 기준과 방향을 찾는 사람들의 갈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각 종파마다 여러 유형의「경전읽기 모임」이 움직이고 있으며 경전 번역도 활발해지고 있다. 「희년」,「복음화 2천년대」,「복음화 3세기」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에서도 올바른 성서운동의 정착을 위해 더 한층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성 예로니모)이란 말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역사의 순간마다『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대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계시헌장 21)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