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순 시의 바탕은 어떤 시적 오브제일지라도 그것이 현저하게 서정적인 빛깔을 띠고 드러나는 데에 있을성 싶다. 이는 그의 시편들이 한결같이 현재에 촛점을 맞추면서 대개 경험적 관련에서 이양(離揚)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직관적으로 파악한 대상도 시인 자신의 성향에 용해되어 이른바 「감정의 상징에 전화(轉化)되어」있다는 특성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매일 어둠곁에 쓰러져 죽고/ 다시 태어나는 빛의/ 사람은 아름답다」라는 시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은 예수의 뒷모습을 조형한 이 구절에는 시인의 주정적인 경험에서 얻어진 이미지를 상징으로 포장하여 감동을 주는 언어로 전달하고 있음을 판별케 된다.
이번에 출간된 새 시집에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의 시각의 양극화 현상과 그 조화에서 찾아진다.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는 시인의 확고한 포즈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색과 현양에 있지만 또 한편으로 자신을 에워싼 삶의 정황에 부단히 관심을 쏟으며 고뇌한다. 시인이 신앙으로 눈을 돌릴 때는「태양의 눈이 마을을 비춘다」식의 밝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때문에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어둠속에 빛으로 오는 죄인들의 친구를 만나는 지고한 감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과 도시의 풍정에 쏠리는 인식은 아주 어둡고 찌들며 삭막한 세계로 제시된다. 언제나 잘 맞지 않는 전화다이얼, 며칠째 청진기는 청취 불능인가하면 도시공간은 예외없이 삭막하고 의문과 유황냄새로 가득찬 곳이다. 아마도 배달순 시인은 도시를 통해서 현대적인 것, 죄 많은 인간이 이룩한 것, 신의 은총을 등진 현세를 표상하려 했을런지 모른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인사 (人事)도 따라서 음울한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떠도는 자의 슬픔/ 안개속의 수수깨끼를 찾아/ 사내는 숲을 헤맨다/ 집들은 잠속에 깊이 가라앉고/ 얼룩진 얼굴, 강의 흐름 속에는/ 별도 뜨지 않는구나」하고 탄식하는 저간의 사정이 이래서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의 역사인식 또한 어둡다. 거창양민 학살, 광주의 문제, 노씨 비자금 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시대의 통증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비극적이며 뒤틀린 질서에 직면하여 그가 꿈꾸는 것은 오로지 신앙에의 귀의이다. 작은 예수, 자수정 묵주, 저녁미사, 강복 이란 의미망들에서 그의 갈증과 희구를 십분 엿보게 된다. 때로는 달빛과 하아프 음색같은 은유를 동원하여 간접화법의 득의에 다다르려 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시인은 「갈대 쓰러져 우는/ 을숙도의 뻘밭/ 새들이 날개를 펴고 있다」라고 읊은 바대로 영혼의 구원이란 명제와 결부시키고 있다.
시에 대한 정의(定義)와 이해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불변의 속성은 간략한 언어의 정련 및 시적인 이미지의 처리에서 찾아질 터이다. 배달순 시인은 서정적인 체질에 더해서 이를 잘 터득하고 있다. 요설을 줄이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공감대를 획득하려 시도한다. 기왕에 펴낸 역작 「김대건 신부」로 95 가톨릭 대상 문화부문을 수상한 시인의 새시집은 이런 연유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또 하나의 예언자 몫에 동참했다. 한국 시단의 신앙시들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며 소박한 찬미가에 치우치는 패턴에서 벗어나 세련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 가톨리시즘에 접근한 노력은 상찬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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