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
그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질의 세계는…인간이 세상-안에 있는-정신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 자신에게 오는 체험의 영역이다…인간이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을 충족시키는 것은 바로 물질세계 안에서이자, 어떤 면에서는 그 세계에 의해서 인데, 결국에 가서는 인간이 자신의 발전하는 인격체를 표현하는 것은 그 물질세계 안에서인 것이다. 그 인간 존재는 하나의 육체적인 실재이고 그에 따라 상징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간적 성향의 원리를 마련해 놓는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생명을 휘감고 있는 육체성은 하나의 표상이자 상징이다(E. 스킬레벡쓰, 하느님과 해후의 성사인 그리스도, 영어판 64면).
스킬레벡쓰는 이 인간의 육체성, 다시 말해서 실존적이고 인격적인 해후를 위한 대화로서 표상이자 상징을 인간 예수의 육체성에 적용시킴으로써 그 분의 성사적 특성을 일차적으로 밝혀낸다.
…신적 구속 은총의 인격적이고 보이는 실현인 인간 예수는 성사이면서도 원성사인데 그 이유는 하느님의 아들 자신인 이 사람은 아버지에 의하여 자신의 인간성 안에서 구속이라는 현실로 나아가는 단 하나의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E. 스킬레벡쓰, 하느님과 해후의 성사인 그리스도, 영어판 15면).
그리고 그는 성사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sacramentum pro popul), 즉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과 해후하여 거룩해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인간 예수의 제2의 성사적 특성을 밝혀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제시했던 주제 아래 정리해 보고 싶어했던 내용을 그의 표현을 빌려 함축할 수 있게 된다.
인간 예수께서 몸소 접근해 오신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해후를 위한 하나의 초대였는데 이유는 그 사람이야말로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와의 인간적인 해후는 하느님과의 해후의 성사이다(E. 스킬레벡쓰, 하느님과 해후의 성사인 그리스도, 영어판 15-16면).
이렇게 예수를 원성사라고 규명한 스킬레벡쓰는 같은 방법으로 교회라는 실존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시각에서 숙고하는 가운데 「보이는 교회자체는 주님의 신비체」이자「하나의 표상인 사회의 형태로(societas signum)실현된 그리스도의 은총과 구속에 대한 가시적인 표현」이기에 교회 역시 하나의 본성사라고 생각하고 또 같은 논리를 개별 성사에 대해서도 적용시킨 결과 성사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와의 해후』의 기능을 갖는다고 해석하게 된 것이다.
③교회의 상징 행위들
이 주제로 기능적인 면에서 성사를 이해하고자 한 대표적인 신학자는 카알 라너(Karl Rahner)이다. 그의 성사신학은 몇 가지 면에서 스킬레벡쓰의 신학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르다. 그는 스킬레벡쓰와 같은 시기에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 논지를 지속시켜 나가면서 발전적으로 깊이를 더해 가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조직적인 체계로 마무리 지었다.
그는 자신의 성사관 확립을 위해 실존주의와 현상학을 그 바탕으로 설정하고 활용했다. 현상학의 목적 가운데 한 가지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현상 즉 인간이라면 면제받을 수 없는 확정의 사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법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라너가 자신의 성사관 확립을 위해 채용하게 된 현상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상징 행위를 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취하는 모든 행동은 자신들이 무엇인지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로써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할 때의 목수는 그 작업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상징하고 정직한 사람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상징하기 마련이다. 물론 각 사람은 각 사람으로서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의 한 가지를 구체화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때 자신들이 이전에 해보지 않은 것들을 행한다. 어떤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 그는 새로운 것을 하게 되는 것이고 또 그것을 계기로 수영 선수가 되어 나가는 중이기도 하다. 수작업을 통해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작업을 해나감에 따라 더 잘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행동들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을 뛰어 넘거나 초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그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상징하거나 구체화한다.
라너는 자기초월의 이 현상을 가톨릭에서 신학적으로 은총에 대해서 논할 때 주목해온 인간존재에 관한 것이라고 여겼고 또 그 현상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가톨릭신학이 전통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말해 온 것은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선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한 것이라고 여겼기에 성장이나 발전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명 자체도 하느님의 선물 즉 넓은 의미에서 은총의 선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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