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3년을 거치는 동안 학생 교사 학부모 머리속에 「점수」와 「대학」만으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오히려 취학 전부터 점수 우상화 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대입을 준비하는 고3이 되면서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 지옥같은 입시 전쟁을 치른다.
『대개 7시까지 학교에 등교하면 9시 정규수업 전까지 방송 보충수업을 두 시간 정도 합니다. 수업 후 밤 10시까지 야간자습을 하지요. 10시가 지나서 교문을 나서면 독서실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서실에 가서 새벽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일과입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서울 ㅅ본당 ㄱ군. 그는 각 대학에서 논술에 비중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주말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논술 공부를 하러 학원에 간다고 들려줬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녹화된TV 방송수업 일주일분을 집에서 공부하며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런 처지의 고3 아이들에게 성당은 어떤 공간일 수 있을까.
『고2로서 주일학교는 졸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자칫 학생미사라도 나가면 후배들이나 어른들 보기에 대입준비를 열심히 안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성당가기가 흔쾌히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일날 성당을 가면 역시 보는 이들마다 「공부 잘 되니」소리에 경우에 따라서 더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모두 공부하라는 식으로만 몰고 있으니 성당에 와 있는 것이 잘못돼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재수생들을 포함, 입시생들에 대해 교회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대부분 일선 본당에서는 고3들, 재수생들만을 위한 지속적이고 뚜렷한 사목적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봉헌되는 수험생미사나 몇몇 본당서 간헐적으로 열리고 있는 고3모임 정도다.
교회의 관심을 지적하기에 앞서 일부에서는 학생들이 고3이 되면 아예 성당에 나오지 않는 점을 상기시킨다.
주일날 성당에서 고3 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입시준비 기간 동안에는 성당을 잊고 지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많아 학생들 자신도 성당을 멀리하게 되고 부모들도 이를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례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사목 관련자들은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심신적으로 지쳐있는 그들에게 영신적 위안과 풍요로움을 준다는 측면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청년 계층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 어떤 형태로든 사목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박아청 교수는 『「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그들에게 교회는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맹목적인 대학 입시 분위기에서 벗어나 주말에 그들이 생의 의미와 기쁨 보람을 고양시키고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장소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대교구 까르딘 청소년 상담소 김은숙 수녀(그리스도 성혈흠숭 수녀회)는 특히 재수생의 경우 입시문제로 인한 개인적 어려움은 더 클 수 있다고 들려주면서 고등학생들과 달리 특별한 소속이 없는 그들은 쉽게 유흥시설 등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얘기했다.
재수생들은 교회 안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고3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나 일단 입시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재수생들은 고3입시생들과도, 대학진학 후 교리교사 청년부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예 숨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서울 낙성대본당에서 1년간 고3 월모임을 지도해온 김 수녀는 모임에 나왔던 학생들 중 재수를 하게 된 한 남학생을 금년 고3 모임에 합류시킬 계획이라고 말하면서 고3 모임이 활성화 된다면 재수생 지도문제도 함께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울 성수동본당에서도 고3 모임을 4여년간 지속하고 있다. 성수동본당은 부정기적이나마 학생미사후 미사참례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갖고 대화나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낙성대본당과 성수동본당의 고3 모임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공간이라기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고민과 갈등을 풀어주는 장」이라고 전하고「이 시기는 어찌 보면 신앙적으로 가장 간절함을 가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구태여 신앙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더라도 성당이라는 틀 안에서 충분히 자신감과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교회가 고3과 재수생 등 입시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몫은 일단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겠다는 따뜻한 시선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일주일 혹은 한 달 동안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 갈등 고민을 풀고 신앙 안에서 재충전 할 수 있도록 대화 공간을 배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관심있는 이들은 의견을 밝힌다.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현직 교사나 어머니들을 기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김은숙 수녀는 『이와 함께 본당에서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이 부모교육』이라고 전제하고 『고3 학생들의 심리상태, 입시생을 둔 부모 자세 등을 적절히 교육시켜 학생과 부모가 동반자적 입장에서 입시기간을 지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더 나아가 교구 차원에서 고3 재수생 등 입시생들을 지도할 전문 교사를 연수 교육 양성하는 것도 고려돼야 할 사항이라고 김 수녀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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