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변하는 북한의 정세는 여러 가지 통일 시나리오를 출현케 하고 있다. 어떤 의미의 통일이든 그것은 엄청난 혼란을 동반할 것이라는 상상과 함께. 광복 50주년 이었던 지난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주창하며 출범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지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다. 화해 기원 미사와 화해학교를 실시하면서 지난 1년간 화해의 불씨를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지펴가는 노력을 전개해 온 민족화해위원회. 통일을 향해 우리의 순교정신이 화해와 일치를 위해 겪어야 할 희생정신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적 영성이 될 수도 있다는 민화위 위원장 최장무 주교를 만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6년도 구체적 실천방안들을 살펴 보았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출범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광복 50주년이라는 중대한 기점에서 출범한 민화위의 기본 정신은 무엇입니까?
▲ 화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것보다 복음적인 핵심의 요소라고 봅니다. 글자 그대로 이웃과 화해하고 민족이 화해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다운 또 인간다운 삶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데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또 반대로 그런 화해의 노력이 부족했고 제일 안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 출범 당시 민화위의 활동기조를 크게 행사, 사업, 기도 등 세 가지로 설정하셨는데 지난 1년간 펼친 주요활동을 설명하신다면?
▲ 화해는 성서적인 기초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을 먼저 봉헌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교구의 중심인 명동 주교좌 성당에서 화해 기원 미사를 봉헌하였고 주님의 은총 안에서 이것을 1년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뜻이 공평하게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올바를 선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6개월에 걸쳐 민족화해학교를 개설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종교인으로서 남북관계의 통로를 찾아보기 위해 이웃 나라인 북경도 갔었고 작년 10월 하순에는 미국에서 일주일간 이북교우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열매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화해학교를 개설하신 이유와 얻고자 했던 기대는 무엇이였습니까? 또 화해학교 다음계획이 있으신지요?
▲통일을 위해 정부나 운동권 측에서 모두 일치와 화해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러한 것에 많은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변적인 또는 재야적인 소리 뿐만 아니라 정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가 알아볼 필요가 있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화해학교를 열게 된 기본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강의내용도 정치 및 사회적인 문제, 또 역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분단의 원인과 결과 등을 나름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도록 꾸몄습니다. 아울러 이것은 단순히 지식전달의 차원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통일역군들을 양성한다는 포부도 가져 봤습니다.
제1단계에 이어 제2단계 3단계까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2단계에서는 좀 더 깊이있게 교회의 사명을 깨닫기 위해 신학적 철학적인 반성과 함께 그러한 실천 신학적인 또는 응용 철학적인 면 등 1단계보다 좀 더 짧은 단계로 마련할 생각입니다. 또 3단계는 구체적으로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실천적인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 북한의 수재민을 지원하는 교회의 입장은 무엇이며 아울러 최근 불거지고 있는 귀순자 문제에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북한 수재민을 돕고 귀순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민화위의 기본취지와 특성을 드러내는 차원입니다. 하느님을 공경한다면서 이웃을 저버린다면 우리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위해 특별 모금을 했고 보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역적 혈연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 위기를 당했다고 하는데 「오불관언(吾不關焉)」 한다면 우리 인간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적십자사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북한 구제에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잘 했다고 봅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해관계를 넘는 인간관계 회복을 위한 차원에서 새로운 정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당장 줄 수 없다고 그만 둘 것이 아니라 추후 나눌 수 있는 물량 확보 차원에서도 이 운동은 지체할 수 없고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통일이 정치적으로 된다 하더라도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귀순자들이 이 사회에서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의 준비, 정신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귀순자들에게 돈이나 조금 주고 살도록 하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무관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응과정에 있어 동참하면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그들을 초대해 협력해 드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최근 북한 상황은 생각보다 통일이 빨리 올 것으로 예상하게 합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민화위와 신자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요?
▲ 우리는 동서독의 통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순간의 기쁨이었고 예상치 못했던 숙제들이 홍수같이 밀려 왔습니다. 이 예기치 못한 충격,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 바로 화해학교 입니다. 50년간 사회 정치구조와 사상이 다른 상황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났을 때의 충격과 이질감,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해소하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학교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보다는 통일 후를 대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이 꾸준히 통일비용을 저축했었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는 어려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적인 특성인 품앗이나 계 등의 정신을 살려 나갈 수 있습니다. 민족의 특성으로서 이웃사촌의 정신을 발휘해 나간다면 우리는 독일이 이룩한 통일보다 더 한국정서에 맞게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남한의 10개 본당이 북한의 본당 하나를 책임지는 정신과 함께 내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손을 조금만 펴면서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면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는 별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 민족화해의 문제는 우리 민족 모든 구성원의 문제이자 과제입니다. 이 화해의 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과 구상이 있다면?
▲ 화해 기원 미사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정신운동으로 확대되기를 바랬습니다. 적어도 천주교회의 모든 본당들이 화요일에 화해의 미사를 봉헌하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화해를 위해 계속 기도해 나간다면 화해의 씨앗은 확보돼 나가는 셈이 됩니다. 이 씨앗이 번져 나갈 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감정의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화해학교의 기본정신도 지역 간 및 남북한 사이에서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정화시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해 나가자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화해위원회는 지난해 전 본당에 미사가 확산되기를 바랬으며 동시에 성지순례를 시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순교정신이 화해와 일치를 위해 겪어야 할 희생정신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2단계 한국적 영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별히 김대건 성인 순교 1백50주년과 최양업 신부의 탄생 1백75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순교영성을 기리기만 하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어받아서 다시 꽃피움으로서 우리의 큰 과제인 화해와 일치를 확산시켜 나가는 기폭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순교자 현양위나 북선위 등 기존의 여러 단체나 운동과 연대를 해서 각 교구로 확산시켜 나간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고 폭발적인 힘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담=이윤자 취재국장ㆍ정리=우재철 기자
◆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출범 1주년 결산
민족 화해ㆍ일치 터전 일궈
남북 신자 공동세미나 등 짧은 기간 큰 성과 거둬
같은 민족이면서도 반목과 불신으로 반세기를 살아온 민족공동체에 공식적으로는 맨처음 화해와 일치를 가르쳐왔던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화해와 일치의 성사인 교회의 사명 완수를 위해 태동한 화해의 전령답게 불신과 갈등이 만연된 이 사회에 화해의 작은 씨앗을 틔워낸 민화위가 3월1일로 출범 1주년을 맞았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마다 명동성당에서 봉헌해 온 민족화해 미사를 시작으로 민족화해학교 개설과 북한 수재민돕기 운동, 광복절 특별 미사 봉헌, 북한 신자와의 공동세미나, 남북 공동기도문 봉헌 등 민족화해위원회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50년간 기울여 왔던 교회의 통일 및 화해노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 큰 성과를 일궈 냈다.
출범 2년째를 맞은 민족화해위원회는 2천년 성년때까지 지속하기로 한 당초의 목표와 취지를 살려 나가기 위해 금년을 제2의 도약기로 삼아, 화해의 분위기를 보다 저변으로 확산해 나가면서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화해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민족화해위원회는 체제 유지에 위기를 맞이한 북한에서 대량의 탈북자들이 생겨나는 등 화해를 향한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상황에서 탄생됐다는 점에서 교회는 물론 정부나 재야 등 교회 안팎의 기대와 주목을 동시에 받아 왔다.
명동성당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봉헌해 온 민족화해 기원 미사의 경우 진정한 마음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담아 봉헌하는 미사로 자리를 굳혀왔다.
화해 미사에서는 또 매주마다 북한 동포들과의 물질적 나눔을 위해 화해헌금을 봉헌, 2월20일 현재까지 1천5백40여만 원의 헌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교구 차원의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벌여온 화해위원회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10만불을 대한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미사에 이어 지난해 10월4일 개교된 민족화해학교는 교회와 사회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를 대상으로 통일을 위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장을 마련해 준 최초의 화해학교라는 평가를 받을만 했다.
민족분단 상황 및 남북한 체제 이해와 남북한 통일정책과 분단국 사례연구, 통일을 위한 노력과 통일 이후에 대한 준비 및 교회의 역할 등을 주제로 마련된 화해학교는 특히 보수와 진보의 양 측면을 모두 수렴하는 중도적인 입장에서 통일문제에 접근, 교회 내외의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다.
제1단계에 이어 지속될 제2단계 화해학교는 주로 「화해와 일치에 대한 신학적 접근」과 「분단국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뇌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앙적 시도에 관한 이해」, 「현 시점에서 한국 가톨릭이 수행해야 할 소명」등을 큰 주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한편 민족화해위원회는 3월5일 오후 6시30분, 명동성당에서 민족화해 기원 미사 봉헌 1주년 기념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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