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광복 50주년 이라고 꽤나 떠들썩했다. 그 떠들썩함 속에서 조용히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 발간되었다. 원로 소설가 송원희 선생이 철저한 답사와 정확한 자료를 섭렵해서 내놓은 역작 ‘안중근, 그날 춤을 추리라’였다. 그는 소설 집필을 위해 3년에 걸쳐서 중국을 두 번, 러시아를 한 번 다녀왔다. 아마 길이 막혀있지 않다면 안 의사의 고향인 이북땅, 청계와 진남포도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녔을 것이다.
이 소설은 치욕스러운 보호조약이 체결되던 을사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안중근의 나이 26세 때였다. 토마스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한 지도 11년이 되는 해였다. 개화파였던 부친 안태훈의 영향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토마스는 우국충정에 불타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이다. 이완용을 비롯한 다섯대신, 이른바 오적의 매국노들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주권이 침탈당하자 토마스는 울분을 삼킨다. 그는 민 주교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대학설립을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영세신부인 홍 신부는 항일운동 자체를 반대한다.
그는 교회는 금하지만 하느님은 금하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으로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설립해서 아우에게 맡기고 자신은 독립군이 되기 위해 연해주로 간다. 그리고 홍 신부에게 성사를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심지어 홍 신부는 교회에서 제적시킬 수도 있다고 까지 한다. 그는 프랑스가 영국이나 독일에게 나라를 빼앗겨도 아무 저항없이 기도나 하시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어쩔 수 없이 월남이라는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사제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연해주에 온 그는 잠시 청년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결국은 독립군이 되어 참으로 모진 고생을 한다. 그리고 1909년 새해 아침, 그는 성모님께 성서를 받는 생생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그는 일본 신문기자로 변장하여 역사에 들어가서 불과 열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겨 명중시킨다. 이것은 이천만 동포의 총탄이라고 외치면서.
고향에서부터 막연하게 품었던 꿈을 이룬 것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여순감옥으로 끌려가게 되고 5번의 공판을 거쳐 사형언도를 받는다. 그는 민 주교에게 성사를 청하는 서신을 띄우지만 다시 거절을 당한다. 그러나 그의 영세신부인 홍빌렘 신부는 주교의 허락없이 여순감옥으로 찾아와 그에게 성사를 베푼다. 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인다.
그는 감옥에서 자서전을 집필하고 달인의 경지를 보이는 명필의 붓글씨 작품을 남긴다. 그리고 86년 전인 1910년 3월26일 묵주기도를 드리고 오전 열시 십오분, 교수형으로 절명한다.
이러한 안 의사의 행적을 철저한 고증과 자료로 형상화 시키고 있는 이 소설에는 을사보호조약의 자세한 내용, 헤이그 밀사사건, 또한 그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의 면모가 때로는 면밀하게 때로는 단편적으로 담겨져 있다.
청소년들, 젊은 세대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읽히고 싶을 만큼 근대역사의 참고서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특히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은 참으로 감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선교사 사제들의 사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는 놀라운 신념으로 조국사랑과 신앙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결코 책장을 훌훌 넘기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었을 때 한 위대한 인간이 영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불사른 경이로운 영혼을 뜨겁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86주기에 소설작품으로 새로이 살아나는 신앙과 조국 사랑 일치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 필요한 정의의 빛이 아니겠는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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