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나눠주는 사랑의 행위에 종교와 빈부, 계층의 벽이 있을 수 있을까. 점점 이기주의 물질주의화 되어간다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눔」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고 얘기들 한다. 본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는 비신자들을 찾아보았다. 창간 69주년 기획으로 마련한 이 난은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을 통해 우리 신자들이 가져야할 나눔의 소명을 더욱 절실히 느끼기 위해서이다.
성남시 수진1동1055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제과점 「빵아저씨」주인 나용선씨. 그는 일 년에 한 번, 사월초파일에 절을 찾는 자칭「나일론 불자」다. 명색이 불자이면서도 자주 절을 찾지 못하는 그이지만 거의 매주 일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거나 빵보따리를 전해 주는 곳이 있다.
수원교구 용인 성심원(고아원,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꼬 수녀회 책임)의 1백여 명 아이들은 주일이 되면 나용선씨의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린다. 6년을 한결같이 일요일마다 따끈한 빵을 구워주러 오는 나씨는 이제 아이들의 아빠나 다름 없는 성심원의 소중한 존재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 되면 나씨는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위해 5단짜리 케이크를 만든다. 처음 이 같은 5단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을 때 TV에서나 보았던 거대한 케익을 먹을 수 있다는 「감격」때문인지 더러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여느 집 꼬마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빵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듯 성심원 아이들은 나용선씨의 빵나눔을 가족의 사랑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경영하고 있는 제과점 「빵아저씨」 이름도 성심원 아이들이 나씨를 그렇게 불러주었던 데서 연유한다.
그는 일요일마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느라 남들처럼 휴가가는 것도 잊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빵아저씨가 아닌 「빵점 아빠」다.
성심원과 함께 인근 지체장애아 재활원 등 세 군데에 매주 혹은 격주로 빵을 나눠주는 나씨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빵을 먹는 모습에서 온갖 피로를 잊는다.
나용선씨는 성심원에 아예 2백여만 원 상당 오븐기를 자신의 부담으로 들여놓았다. 직접 따뜻한 빵을 구워주기 위해서이다. 생색내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온다간다 말도 없이 빵을 만들어 주고 온다는 그는 이제껏 성심원 측에 재료비를 달라고 한 적도 없다. 한 달에 적게는 30여만 원, 많게는 60여만 원 하는 재료비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술을 통해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족하다는 생각이다. 월 80만원 셋방을 살고 있고 부인과 대학생 고등학생 등 3명의 자녀가 자신의 보살핌을 기다리고 있지만…
나씨가 성심원을 다니면서 늘 마음속에 갖고 있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쳐 사회인이 됐을 때 제과제빵 기술자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동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벌써 두 명의 아이들이 자신과의 인연으로 제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자가 됐다. 이들은 가끔 나씨의 성심원 방문에 동행을 하기도 한다.
6년여 전 너무나 허무하게 사업실패를 경험하고 난 후 자신이 가진 바를 남들과 나누고 사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나용선씨. 제과 기술자로 나눔을 실천하고자 결심한 그는 처음 양로원 등을 생각했으나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만들어 먹이고, 원한다면 기술도 가르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용인의 성심원과 우연찮은 인연을 가지게 됐다.
『나눔은 마음과 사랑입니다. 돈 몇 푼으로 생색내는 것은 어려운 이들을 더 서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쉬는 날마다 불우한 사람들을 찾아가 얼굴이라도 비춘다면 그것이 이웃돕기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특별케이크를 만들어 그 판매금으로 성심원 아이들 장학금도 마련하고 있는 나씨는 후원자들이 좀 생긴다면 아이들에게 더 맛있는 빵을 자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질은 좋은 곳에 쓰여지고 나누어질 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데도 제가 하는 일에 많은 신자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시고 격려해 주시어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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